◈ 예루살렘/♧2. 시온산 지역

[스크랩] 알려지지 않은 성지 이야기 시온산

영국신사77 2010. 5. 15. 19:00

 

시온은 히브리어로 ‘찌욘(ןוי?)’으로 발음되며 ‘건조한 땅’을 뜻하는 ‘짜욘(ןוי?)’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구약성경에서 시온은 대부분 예루살렘이나 이스라엘 민족 전체를 지칭하는 포괄적이고도 추상적인 명칭으로 등장하며 ‘시온의 딸’, ‘시온의 아들’ 등의 상징적 표현으로 자주 쓰여졌었습니다. 하지만 시온은 원래 다윗이 점령하기 전 여부스 민족이 살고 있었던 예루살렘 요새를 지칭하는 말이었습니다. 따라서 다윗이 점령한 여부스 도시가 ‘메쭈닷트 찌온’, 즉 ‘시온의 요새’로 나타나며, 다윗의 시온은 ‘이르 다비드’, 즉 ‘다윗성’으로 불리워 진 것입니다(삼하 5:7). 같은 내용을 언급하고 있는 역대기에서도 예루살렘, 여부스, 시온 요새, 다윗 성 등이 모두 한 장소를 나타내는 것으로 묘사한 것으로 보입니다(대상 11:4-5). 성전공사를 마친 솔로몬은 다윗 성, 즉 시온의 한 장소에 안치됐던 야훼의 법궤를 성전으로 “올려놓았다”고 언급하고 있기 때문에 솔로몬 시대에도 여전히 시온은 다윗성의 다른 이름이었음을 잘 알 수 있습니다(왕상 8:1).

 

서기전 8세기 말 히스기야 시대에 이르러서 시온은 더 이상 예루살렘의 남쪽에 위치한 다윗 성을 지칭하지 않고 예루살렘 전체를 일컫게 됩니다. 따라서 이사야의 예언에서는 “시온의 딸”과 “예루살렘의 딸”이, 그리고 “예루살렘”과 “시온산”이 동격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왕하 19:21,31). 시온의 딸이라는 집합적인 개념으로 미루어 시온은 예루살렘뿐만 아니라 유다왕국 전체를 지칭하는 것으로 확대 해석할 수 도 있습니다.

제 2성전시대에 시온산은 예루살렘 중에서도 성전 산을 지칭한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주전 164년 마카베오 혁명 당시 예루살렘을 점령한 유다와 그의 형제들은 시온산으로 올라가 무너진 성전을 재건했다는 기록이 외경 마카비서에 기록되어 있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1마카 4:36-61).

서기 70년 로마 군이 성전을 파괴하고 예루살렘이 혼란기에 접어들었을 때 다윗 성의 위치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당시의 역사가 요세푸스는 오늘날의 예루살렘 옛 성의 서쪽에 위치한 시온 산이 가장 높은 지역이었기 때문에 이곳을 다윗 성으로 보았고 이곳에 다윗의 무덤이 있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주전 135년 바르 코크바(Bar Kochba) 반란을 진압한 로마의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예루살렘을 로마식 도시인 엘리아 카피톨리나로 재건할 때 원래의 다윗 성 자리인 기드론 골짜기 근처의 왕들의 무덤 지역을 채석장으로 활용했고 유대인들을 예루살렘으로부터 쫓아냈기 때문에 유세비우스(Eusebius) 같은 기독교 학자도 베들레헴에 다윗의 무덤이 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주후 11세기 예루살렘을 점령한 십자군들은 시온 산에 다윗의 무덤자리를 재확인하고 성지로 선포해서 오늘날까지 이 전통이 내려오게 되었고 현재도 다윗의 가묘는 시온산에 있습니다. 시온산에는 주전 1세기 말 임박한 메시아를 기다리는 기독교 공동체의 회당이 있었으며 이 회당은 나중에 “사도들의 교회”로 불려졌습니다.

주전 382년 테오도시우스(Theodosius) 황제는 이 회당 옆에 팔각형 모양의 기념교회를 건설했고 이어서 주후 415년에는 “하기아 시온(Hagia Sion)”, 즉 “거룩한 시온"지역으로 정하여  교회가 대규모 바실리카(basilica) 양식으로 건설됐었습니다. 이때부터 이 지역이 시온교회가 있는 언덕, 즉 시온산으로 오늘날까지 알려진 계기가 된 것입니다.

 

십자군들이 서기 12세기 초 시온 산에 성모 마리아 교회를 건설할 때 사도들의 교회를 건물 안에 포함시켰고 오늘날 볼 수 있는 아래층의 다윗의 무덤과 위층의 마가의 다락방이 있는 건물은 십자군 시대의 아름다운 아취 형 건축양식을 잘 드러내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예루살렘성의 성벽 밖에 위치한 시온산의 정상에는 1910년에 완공된 독일 베네딕트 수도회 소속의 카톨릭 교회의 마리아 영면교회(Dormition Abbey)가 자리 잡고 있으며 힌놈 골짜기 쪽의 비탈에는 “갈리칸투(Galicantu)”, 즉 닭이 운 것을 기념하는 베드로 회개 기념 교회가 신약시대의 대제사장이었던 가야바의 관저 터에 지어졌습니다. 1970년대 이후 발굴을 통해서 시온산 지역에 구약시대의 성벽의 흔적과 신약시대의 성문 등을 확인한 바 있습니다. 시온 산의 남서쪽 비탈에는 미국의 성지연구소에서부터 출발한 예루살렘 대학과 그리스 정교회의 연구소가 자리 잡고 있으며 그 외 지역은 오늘날 예루살렘의 대표적인 기독교인들의 묘지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령천 교회 선교 목사 김용규 제공

출처 : 성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글쓴이 : 데비드 김 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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