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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델피

영국신사77 2010. 3. 27. 07:51

 

 

 

 

해발 900미터 정도인 산을 오른다. 지나온 테살리아 평원이 저만큼 아래로 아득히 펼쳐진다. 구불구불 오르는 길. 길이 있는 곳마다 곳곳에 서 있는 미크리에클레시아. 작고 앙증맞은 그 모양이 예쁘고, 이미 하느님 품안에 있는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배어 있는 터라 자꾸만 눈길이 간다. 길고 긴 길을 가고 있는 이 순간에도 각기 다른 모습의 그 함들은, 누군가의 고통을 담고 길가에 서 있다. 죽음, 그것도 돌연한 죽음. 어느 날 해 뜨기 전의 산책길에서, 혹은 기도하러 나왔다가 해지는 저녁 그윽한 집으로 다시는 들어가지 못한 영혼들. 다시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지 못한 영원한 이별. 그 고통의 흔적을 스치며 기도한다.

 

산꼭대기 평원 마을을 지난다. 스프링클러가 누런 밭에 세찬 기세로 물을 뿌리고 있다. 핀두스 산맥으로부터 흘러나오는 물길 덕분에 땅이 기름진 마을들이다. 높은 산에서 2차선을 달리느라 차가 낑낑댄다. 점심을 먹고도 구불구불 산길을 달린다. 땅을 보고 밟고 공기를 마시는 것!

 

 

 

불이 났는지 앞산 너머에서 큰 연기가 일어난다. 그리스인 기사가 아버지와 통화를 한 뒤 담뱃불로 인한 실화라고 전해준다. 라미아라는 도시를 지나는데도 연기는 잡히지 않고 헬리콥터가 떴다.

길가에 불에 탄 듯 시커멓거나 오랫동안 방치되어 녹이 슨 미크리에클레시아가 보인다. 줄곧 죽음'을 묵상하며 간다. 그리스인들은 공동묘지에 사이프러스를 심는다. 영원성을 상징하는 사이프러스의 큰 키가 멀리서 보이면 어김없이 하얀 묘비를 가진 묘지가 나타난다. 점심을 먹고 난 후라 다들 깊이 잠들어 있다. 높고 아름다운 산들, 산맥을 넘었다. 예쁜 마을과 그리로 난 작은 길들을 보며 신의 음성을 들으러 가는 길. 신탁소의 관문인 듯 깊은 가슴을 가진 산맥을 넘는다. 아, 오늘 너희가 그분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면! 너희는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마라, 므리바에서처럼 광야에서, 마싸의 그날처럼(시편 95,7-8).

 

 

이 골짜기 어디쯤에서 오이디푸스의 스핑크스가 인간에 대해, 삶과 진리에 대해 묻고 있을 것도 같다.

아주 경사가 심한 고지대인데 기사는 능란하게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다. 도대체 몇 미터나 되는 것일까. 가늠할 수 없는 높이의 산들이 미로처럼 얽혀있고, 그 산들에 오솔길처럼 길이 나 있다. 신음 같은 탄성을 지른다. 이 웅장하고 아름다운 자연에서 주님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산악지방을 넘은 것만으로도 그리스가 귀하다. 산을 내려와 끝없는 올리브 나무들의 행렬을 좇아간다. 암피사라는 올리브 집산지역이다.

 

 

 

 

오후 네 시. 델피에 들어선다. 신탁소보다 먼저 헤르메스, 아폴로니아, 아스파시아 등등의 이름을 가진 호텔들이 우리를 맞는다.

 

 

 

신들에게 바쳐진 해발 2457미터의 파르나소스 산 아래 선다. 여름 태양이 여전히 이글거리는 한낮에 느닷없이 그 돌산 아래 선다. 마른 산 아래 지열 뜨거운 땅으로 귀 기울이면, 낯선 이방인에게도 아폴론의 리라 소리 한 가락쯤 들릴 것만 같은 순간이다.

 

 

 

 

 

 

아폴론은 태어난 지 나흘 만에 아버지 제우스로부터 델피로 가라는 명령을 받았다. 델피에서 그는 헤라의 명령으로 자신의 어머니 레토를 끊임없이 괴롭혔던 거대한 뱀 퓌톤을 죽인 다음 퓌톤이 지키고 있던 가이아의 신전을 차지하고 인간들에게 신탁을 내리게 된다. 고대 그리스에서 만물의 근원으로 숭배하기도 했던 대지의 여신 가이아는 제우스의 할머니다. 하지만 이렇게 조금씩 그녀의 영향, 여신들의 영향은 약화되기 시작했다.

 

아폴론 신전에서 신탁을 전해주던 여사제 피티아와 사제들은 카스틸리아 샘의 성스러운 물로 목욕을 하고 피티아가 옴팔로스 근처의 틈에서 나오는 성스러운 수증기를 들여마신 후 몽환에 빠져 신의 계시를 전하였다.

 

 

 

 

 

아폴론 신전을 떠받치고 있던 38개의 기둥 가운데 남아 있는 일곱 개의 기둥을 지나 음악당과 스타디온까지 올라간다. 숨이 턱까지 차는 더위가 계속되고 있다. 길 가에 있는 샘에서 물을 받아 마신다. 사람들은 신화를 통해 제우스가 델피를 세계의 중심이라고 여겼다고 믿었다. 세상의 탄생을 기억하는 배꼽. 하지만 세상의 중심을 상징하는 옴팔로스는 박물관으로 옮겨지고 델피 땅에는 배꼽을 닮은 바위 하나가 옴팔로스인 양 서 있다. 인간이 마침내 존재를 의식하고 존재를 궁구한 곳. 소크라테스의 말로 잘 알려진 너 자신을 알라'는 격언은 기실 아폴론 신전의 입구에 쓰인 여러 조언 가운데 하나였다. 그곳에는 너무 지나치지 않게', 철학은 인생의 지침'이라는 금언도 함께 있었다.

델피는 이미 보이지 않는 과거이지만 레테의 깊은 강 같은 아득한 여운으로 가슴 한쪽에 자리를 잡는다.

 

 

 

프로페테라는 마을을 지난다. 너무나 맑고 파란 바다. 이오니아 해로 들어가는 물이다. 계속되는 바다에 마음을 뺏기며 간다. 아름답구나, 그리스. 하얀 리오안델리오 다리를 건너 파트라스에 들어선다. 나 또한 델피를 넘어, 아폴론을 넘어 예수를 만나야 한다.

 

출처 : 황금장미정원...
글쓴이 : 월광천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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