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聖地 · 선교사/◆양화진묘원· 선교사

★★[문화재청장상] 마포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 - 이소현 외 3인

영국신사77 2008. 6. 3. 13:02
[문화재청장상] 마포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 - 이소현 외 3인 04-14 | VIEW : 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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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단위 : 개인
참가분야 : 2006, 꼭 지켜야 할 자연·문화유산
성명(단체명) : 이소현, 장종환, 이준범, 이인용
참가작 명칭 :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
부제 : 은둔의 나라 코레아에 심어진 한 알의 밀알들...
위치 : 마포구 합정동 144번지
- 가는 길
지하철 2,6호선 합정역 7번 출구, · 합정동 로터리 지나 양화대교 아래 U턴하여 운하장 골목으로 우회전 후
100m 직진
참가계기 및 동기
평소 근대문화유산이 무엇인지, 그것의 소중함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려하기보다는 낡고 색바랜 토기들이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을 알기 전까지는 그러했습니다. 우리나라가 어렵
던 시절(19C말~20C초) 우리의 근대화에 많은 도움을 주었던 외국인 선교사와 그들의 자녀들은 그들의 소임
을 다하며 먼 이국땅 여기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에 묻혀 있습니다. (고종시의 헤론, 대한매일신보 베델
, 헤이그밀사 헐버트 등) 하지만, 성장위주의 개발논리에 조상들의 숨결과 민족혼을 상실한 채 세월의 뒤안길
로 사라져 간 우리의 소중한 근대문화유산들처럼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도 역사적 가치에도 불구하고
100여년이 넘는 시간동안 무관심으로 점철되어 왔습니다. 이 곳이 이제는 시민들의 보호를 받아 우리 모두의
근대문화유산으로 다시 태어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참가작 개요
■ 참가작 명칭: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
■ 부 제: 은둔의 나라 코레아에 심어진 한 알의 밀알들
■ 신 청 배 경: 100여년이 넘는 시간동안 성장위주의 개발논리에 밀려 무관심 속에 방치되어 온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을 우리의 소중한 근대문화유산으로 널리 알리고자 함.
■ 보전 필요성: 우리나라의 근대화(교육, 의료, 사회, 음악 등)에 앞장섰던 많은 저명한 외국인들이 그들의 자
녀들과 안장되어 있음. 뿐만 아니라, 17개국 약 430여기의 묘가 조성되어 있어 근대 묘지형성과
정 및 비문의 변천사를 연구할 수 있는 역사학습의 장 마련.
▲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의 17개국의 다양한 묘비를 통하여 근대 묘지형성과정 및 비문의
변천사를 연구할 수 있다.


1. 자연·문화적 환경

조선시대 국제적 명소, 외국인 선교사들이 복음을 전하는 수륙교통의 거점기지였던 양화진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의
사이며 고종의 시의였던 헤론의 사망에 따른 안식처로 고종임금이 하사하신 곳이다. 현재 4,000여평 묘역에는 헤이그
밀사 호머 헐버트, 연세대학교 창립자인 언더우드 일가, 대한매일신보 베델선생 등 저명 외국인 선교사와 그들의 자녀
들이 잠들어 있다. 17개국 약 430여기의 묘가 조성되어 있어 근대 묘지형성과정 및 비문의 변천사를 연구할 수 있는 역
사적으로 중요한 곳임에도 불구하고 100여년이 넘는 시간동안 방치되어 있어 많은 비문들이 풍화, 침식작용의 단계로
그 역사적 가치마저 위협받고 있는 실정이다. 인접하여 병인박해때의 순교지였던 사적 제 399호 양화나루·잠두봉 유적
이 있어 역사적 보존가치가 귀중한 지역이다.

2. 보전과 훼손상황
야외박물관이라는 별칭이 있을 만큼 다양한 형태의 묘비와 묘비문이 있지만 과거 한국전쟁 당시 군사적 요충지로 집중
포격 당했을 뿐만 아니라 오랜 시간동안의 풍화, 침식작용으로 이런 귀중한 자료들이 마모되어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이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의 현실이다. 또한, 그동안 체계적 관리가 이루어지지 못하였기에 훼손은 물론 사익을 앞세
우는 이익단체들이 난립하였다. 향후 체계적인 보존 및 관리방안이 절실히 요구된다.

3. 소유 및 관리현황
1890년 조성된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의 면적은 13,224㎡(약 4,000여평)으로 한국 선교기념관 1개동이 자리 잡고
있다. 소유는 (재)한국기독교선교100주년기념사업협의회 외 2개 단체이며, 실질적인 관리는 동 협의회에서 위임받은
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교회(담임목사 이재철)에서 하고 있다.

4. 보전 및 활용방안
희망과 비전의 미래를 위해 우리는 과거를 알아야 하며, 그것을 바로 알리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하다. 전통과 현대, 동양
과 서양이 만나는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은 성스러운 분위기의 근대역사·문화공간인 동시에 우리 근대화에 앞장
섰던 외국인들에게 고마움을 표하는 한국 최초의 보은공간이기에 우리의 소중한 역사·문화의 寶庫인 이 곳을 오늘의 우
리를 있게 한 조상의 숨결이 담겨져 있는 역사와 교육의 장으로, 가족이 함께 근대사를 학습할 수 있는 聖스러운 공간
으로 조성할 의무는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있다.


▲ 6.25 전쟁 당시의 총탄 흔적

▲ 풍화와 침식작용으로 점차 소실되어져 가는 묘비

▲ (셔우드홀) 우리나라 최초 결핵요양원 설립자, 우리나라 최초 크리스마스 실 발행

                                            ▲ (헐버트) - 한국 YMCA 창설,
고종황제 외교고문으로 이준, 이상설과 함께 헤이그밀사로 활동, 비문으로 ‘나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히기보다 한국 땅에 묻히기를 원하노라’, 어렴풋이 보이는 고층건물을 바라보며 헐버트 박사는 얼마
나 가슴 벅차하고 계실까?

                                             ▲ (베델) - 항일언론 투쟁가
대한매일신보 창간, 비문으로 ‘나는 죽더라도 대한매일신보는 영생케하여 한국 민족을 구하라’,
묘비 뒷면 추모 글은 일제가 망치로 쪼아 지워 버린 흔적이 있다.

▲ 의료기술과 시설이 근대화되지 못했던 조선 후기, 많은 선교사들의 자녀들은 머나먼 이국땅에서
태어나자마자 목숨을 잃는 경우가 허다하였다. 보는 것만으로도 애처로움이 느껴지는 선교사 자녀
들의 묘비.

  ▲ 이름이 덜 알려진 선교사들의 모역은 찾아오는 이 하나 없이 무성한 잡초, 들꽃과 동무하며 있다.

            ▲ 1951년 언더우드가 촬영한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 항공 활영사진.(古자료로 참고)

 

 

                                                                                                        출처:http://www.ntrust.or.kr/index.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