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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성경 핵심 공부(57과)/ 사무엘상(1): 엘리와 사무엘 (1-7장)

영국신사77 2008. 4. 20. 20:44

인터넷 성경 핵심 공부(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57과)

 사무엘상(1): 엘리와 사무엘 (1-7장)


A. 서 론

1. 명칭
 1) 히브리 성경-사무엘서
  * 원래 사무엘 상 하는 한 권의 책이었음. 전 선지서에 속함
  * 1517년 봄베르그 판에 와서야 각각 두 권으로 분할됨.

 2) 70인역(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들)
  * 왕국들의 책 제 1, 2권(사무엘서)
  * 왕국들의 책 제 3, 4권(열왕기서)

 3) 라틴 벌게이트 역-사무엘서, 열왕기서
  * 동방교회는 아직도 이 책을 왕국 1,2,3,4권으로 부르고 있다.

 4) 개신교 성경-사무엘상: 네 번째 역사서


2. 저자: 미상

 1) 사무엘(1-24장까지), 나단, 갓으로 추정됨- 바벨론 탈무드에 기록됨.
  "사무엘이...책에 기록하여 여호와 앞에 두고..."(삼상10:25)
  "선견자 사무엘의 글"(대상29:29)

 2) 저자가 참고한 또 다른 자료들
  * 야살의 책(삼하1:18),   
  * 선지자 나단의 글(대상 29:29)
  * 선견자 갓의 글(대상 29:29)
  * 다윗의 시종 행적(대하29:29)


3. 기록 목적

 1) 히브리 왕조 설립을 기록함
  * 왕을 세운 사람, 사무엘의 생애
  * 언약을 잊고 폭군이 된 신실치 못한 왕 사울의 생애
  * 메시야를 배출하는 영속적이고도 정당한 왕조를 세운 신정왕국의 왕, 다윗의 생애

 2) 사사 시대에서 왕정 체제로의 변화하는 과정을 설명하고, 다윗이 진정한 왕국의 합법적인 계승자임을 밝혀 줌.

 3)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고(1-7장), 왕을 요구한(8-12장) 이스라엘의 잘못된 선택의 과정과 그 결과(13-31장)를 보여줌.


4. 기록 시기

 1) 주전 930-722년으로 추정됨: 남북 분열왕국 시기-북 이스라엘 멸망 전
  "시글락이 오늘까지 유다 왕에게 속하니라"(삼상 27:6)-남북 분열 시대임을 보여줌.

 2) 시대적 배경
  * 백성들 뿐 아니라, 제사장까지도 타락한 시대-성범죄(2:12-17, 22)
  * 하나님께서도 침묵해 버리셨던 시대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3:1)
  * 베냐민의 부도덕, 무법(동성연애자-12조각난 시체)
    제사장의 부도덕, 무법(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
    제사장의 타락은 이스라엘의 속죄의 기회마저 상실하게 만들었다.


5. 사무엘 상의 내용 구조

엘리와 사무엘

사무엘과 사울

사울과 다윗

엘리

사무엘

사무엘

사울

다윗의 초기 생활

한나의 기도

어린
사무엘

엘리의
죽음

법궤

왕의
요청

초대왕
사울

마지막
연설

사울

승리

사울의
거역

기름
부음

골리앗
죽임

다윗의
도피

유랑
생활

사울의
죽음

1 2:11

     4

     5

     8

   9

  12

  13

   15

   16

  17

   18

   21

   

 31


<참고> 몇 가지 모순이 되어 보이는 기사들

1. 사무엘에 관한 배경
 * (삼상 1:1)-사무엘의 부친-엘가나-그의 집이 라마다임소빔에 있음(에브라임 지파의 땅)
 * (대상 6:)-사무엘-레위 지파로 소개함.
 * 해결-에브라임 지파가 레위인들을 위해 제공한 성에 엘가나가(48개의 레위인 성읍 중 하나) 산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2. 소년 다윗이 사울에게 소개되는 기사
 * (삼상 16:14-23)-고뇌하는 사울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서 수금 연주자로 소개됨
 * (삼상 17:55-58)-골리앗을 치기 위한 자원병으로 사울에게 소개된 다윗
 * 해결-후자는 골리앗을 치려고 자원한 용맹한 다윗의 배경을 파악해서 그 가족을 자기 정예부대로 삼기 위해 던진 사울의 질문일 수 있다.   

3. 골리앗을 죽인 기사
 * (삼상 17:)-골리앗을 죽인 사람은 다윗이라고 기록됨.
 * (삼하 21:19)-이 거인이 엘하난의 손에 죽은 것으로 기록됨.
 * 해결(대상 20;5)-야일의 아들 엘하난이 죽인 사람은 골리앗의 아우 라흐미였다.

4. 사울을 죽일 뻔한 비슷한 기사가 두 번 반복됨
 * 실제로 이러한 상황이 두 번 반복되었을 수 있다.


1. 엘리와 사무엘(1-7장)
 

* 어둠의 시대

  (삼상 1-3장)은 사사시대의 종말에 관한 기록이다. 여호수아 이후 사사시대는 재난의 시대였다. 이스라엘은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실패하고 말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은혜를 잊고, 가나안 주민들에게 동화되어 구별할 수 없을 만큼 타락하고 말았다. 종교적 부패와 도덕적 타락은 점점 더 심해져 갔으며, 옛 질서는 완전히 그 힘을 잃고 말았다(예-삼손, 기브아 사건, 실로의 제사장들).

  이로 인해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의 한 귀퉁이에 자리 잡은 소수집단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스라엘은 영토가 크게 축소되었다. 요단강 동편의 르우벤 지파는 모압 지파의 팽창으로 인해 거의 소멸되었으며, 단 지파는 블레셋의 압박으로 인해 분배받은 땅을 포기하고 북쪽 라이스로 이주하고 말았다(삿 1:34-36 ). 그때에 블레셋은 남부 해안 지역에 자리잡고 가나안 땅을 모두 차지하기 위해서 기회를 보고 있었다. 그들은 철가공 기술을 독점하고 있었으며 중부 산악 지대의 상당 부분을 장악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스라엘은 종교적,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부패하여 스스로 구원할 능력을 잃었으며, 구원하려는 의지마저 상실하고 말았다.

  이로 인해 옛 질서는 파탄에 이르게 되었고, 제사장 엘리는 이러한 이스라엘의 모습을 대변해주고 있었다. 사사 엘리가 실로에서 대제사장으로 있을 때에는 일반 백성들 뿐 아니라, 제사장마저도 타락하고 말았으며, 영적으로 어두워져서 하나님의 계시가 사라진 영적 암흑 시대가 되고 말았다. 엘리의 아들들은 하나님을 멸시했고, 신성모독적인 언행도 주저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이스라엘은 블레셋에게 언약궤를 빼앗겼으며, 이 소식을 들은 엘리는 죽고 말았다. 이스라엘은 이렇게해서 엘리와 함께 한 시대를 끝을 맺게되었다. 이 시대는 "여호와의 영광이 이스라엘을 떠난 어둠의 시대"였다(삼상 4:22).


* 하나님이 준비하신 구원-사무엘, 다윗


  사무엘 기자는 철저하게 타락한 이러한 시대에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구원 사역에 대해서 말해주고 있다. 하나님은 영적 암흑 시대를 인도하고 자신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서 사무엘을 준비하셨다. 하나님은 사무엘을 모세와 같은 지도자로 세우셨으며, 그를 통해 사울과 다윗을 왕으로 세워 이스라엘을 구원하게 하셨다. 다윗의 등장으로 인해 이스라엘의 운명은 다시 어둠에서 빛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하나님은 다윗을 통해 이스라엘을 빠르게 회복시켜 주셨다. 다윗 이후 이스라엘은 일약 팔레스타인과 가나안 지역의 최강자로 부상하게 되었다. 하나님은 다윗을 통해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가나안에서의 안식을 이루셨다. 이러한 점에서 다윗은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위해 주신 최고의 선물이었다. 다윗은 인간의 정치적 계산에 의해 왕이 되지 않았다.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 되고 약속된 영토를 점령한 것은 모두 여호와의 손에 의해 일어난 일이었다. 사무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불신앙과 죄로 인해 완전히 무너진 나라가, 하나님의 은총과 선물인 다윗을 통해 다시 회복되는 놀라운 기적을 증거하고 있다.


1-1. 한나의 기도와 사무엘의 출생(1장)

  이스라엘의 구원의 이야기는 거창한 이야기로 시작하지 않는다. 이 이야기는 이스라엘과 아무 관계가 없어 보이는 엉뚱한 한 불임의 여인의 깨어진 삶으로 시작하고 있다. 이 여인의 이름은 한나로서, 에브라임 산지 라마다임소빔에 사는 에브라임 사람 엘가나의 아내였다. '에브라임 산지'는 팔레스타인 중부에 있는 구릉 지대로서, 비옥한 곳이었다. 이 지역이 '에브라임 산지"라고 불린 것은 이 지역을 분배받은 지파가 에브라임 지파였기 때문이었다(수 17:15). '라마다임소빔'은 '숩 족속의 두 언덕' 또는 '숩 땅에 있는 고지들'이라는 의미였다. 이 이름은 사무엘 가문의 조상이었던 '숩'(대상 6:26)이 이곳에 살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었다. 이곳은 예루살렘 북서쪽으로 약 8km 지점에 있었는데, 이 곳은 '라마'(언덕이란 뜻)와 동일한 곳이었다. '라마'는 사무엘의 고향이었고, 그의 활동의 중심지였으며, 죽은 후에 장사된 곳이었다. 1절에서 '라마다임소빔' 이란 원 지명을 사용한 것은 '라마'(마을 언덕)가 많이 있었기 때문에, 이를 다른 지역과 구별하기 위한 것이었다. 에브라임 사람 엘가나는 본문과 역대기의 족보(대상 6:1, 27, 28)를 참고해보면  레위 지파로 보인다. 본문에서 그를 '에브라임 사람' 이라 부른 것은 아마도 그가 에브라임 지파들이 살던 곳에 살았기 때문일 것이다. 레위 지파는 타 지파처럼 일정한 기업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각 지파가 제공해 주는 성에 거했다(민 35:1-8). 라마는 정식으로 레위 지파에게 제공한 성은 아니었지만, 엘가나는 어떤 이유에서였는지 모르지만 그 곳에 거하고 있었다.  

  엘가나에게는 한나와 브닌나라 부르는 두 아내가 있었다. 그런데 브닌나에게는 자녀가 있었지만, 한나는 자녀를 낳지 못했다. 한나는 남편의 사랑을 받았지만, 아이를 낳지 못해 슬픔에 잠겨 있었다. 엘가나는 매년 자기 성읍에서 나와서 실로에 올라가서 여호와를 경배하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다. 이때에 제사장은 엘리의 두 아들인 홉니와 비느하스였다. 엘가나는 제사를 드릴 때에 제물의 분깃을 브닌나와 그 자녀들에게 주었으며, 그가 사랑하는 한나에게는 두 배의 분깃을 주었다. 이를 본 브닌나는 자녀가 없는 한나를 매우 괴롭혔다. 그러므로 한나는 그 고통으로 인해 음식을 먹지 않고 울었으며, 엘가나가 그녀를 위로해야만 했다. 이때에 여호와께서 한나를 성태치 못하게 하셨다는 사실이 두 번 반복되면서(삼상 1:5-6), 여인의 절망은 두 배로 깊어지고 있다. 이러한 한나의 상태는 당시 이스라엘의 상태와 비슷했다. 불임의 여인이 아이를 낳지 못하듯이, 당시 이스라엘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거룩한 백성"을 낳지 못하는 불모의 땅과 같았다. 이러한 점에서 한나의 고통은 당시 이스라엘의 고통과 비슷했다. 영적으로 암울한 시대였던 사사 시대에 룻기나, 삼손의 부모들의 이야기, 그리고 한나의 이야기가 기록된 것은 당시 타락한 이스라엘에도 경건한 부모들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한나는 실로에서 제사를 드린 후에 고통을 인해 하나님께 간절히 서원 기도를 드렸다.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아보시고, 나를 생각하시고,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사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1:11)." 그때에 한나는 너무나 진지하게 기도를 드렸기 때문에, 제사장 엘리는 그녀를 술취한 것으로 알고 그녀에게 포도주를 끊으라고 권했다. 그러자 한나는 자신이 술에 취한 것이 아니라 심한 고통 때문에 간절히 기도드린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엘리 제사장은 한나의 고백을 듣고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응답하실 것이라"을 선언했다(1:17). 한나는 이러한 제사장의 선언을 믿고 "가서 먹었으며 얼굴에 다시는 수색이 없었다." 그 후에 여호와께서는 한나의 기도를 들어주셨다. 마침내 한나는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사무엘"이라고 지었다(1:20). "사무엘"은 "하나님께서 들으신 바 되었다"는 뜻을 가진 이름이다. 이 이름은 그녀가 하나님께 기도해서 낳은 아들이라는 신앙고백이 담긴 이름이었다. 이렇게 해서 불임의 가정은 소망의 가정으로 변하게 되었다. 이러한 한나의 회복은 이스라엘 회복의 전조였다. 이제 이스라엘은 한나와 같이 소망을 가진 나라가 될 것이다. 불임으로 고통받던 한나가 여호와께 부르짖고 자녀를 낳게 되었듯이, 이스라엘도 여호와를 의지함으로 다시 열매 맺는 나라로 회복될 것이다. 한나는 아이를 낳은 후에 아이를 젖뗄 때까지 데리고 있다가, 서원한 대로 후에 제사장에게 데리고 가서 그 아이를 하나님께 드렸다(26-28).


1-2. 한나의 찬송(2:1-11).

  한나는 사무엘을 하나님께 드린 후에 찬송의 노래를 불렀다. 이 노래는 "왕의 승전가"에 속한 노래였다. 그녀가 부른 노래는 당시 전쟁에서 승리했을 때에 부르던 노래를 수정한 것이었다. 한나의 노래는 주의 구원을 기뻐하는 한나의 고백으로 시작하고 있다.

  "내 마음이 여호와를 인해 즐거워하며, 내 뿔이 여호와를 인해 높아졌으며, 내 입이 내 원수들을 향해 크게 열렸으니, 이는 내가 주의 구원을 기뻐하기 때문입니다(1)."

  한나는 계소해서 여호와와 같이 거룩한 분은 세상에 없다고 선포했다. 그리고 나서 그녀는 교만한 자들을 향해서 교만한 말을 버리릴 것을 요구했다.

  "여호와와 같이 거룩하신 이가 없으시니, 이는 주밖에 다른 이가 없고, 우리 하나님 같은 반석도 없기 때문입니다(2). 심히 교만한 말을 다시 하지 말 것이며, 오만한 말을 너희 입에서 내지 말지어다. 여호와는 지식의 하나님이시라. 행동을 달아보시느니라(3)."

  그녀는 하나님께서 교만한 자를 낮추시고, 연약한 자를 구원해 주시는 분임을 고백한다.

  "용사의 활은 꺾이고, 넘어진 자는 힘으로 띠를 띠도다(4). 풍족하던 자들은 양식을 위해 품을 팔고, 굶주리던 자들은 다시 굶주리지 않도다. 전에 잉태치 못하던 자는 일곱을 낳았고, 많은 자녀를 둔 자는 쇠약하도다(5).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음부에 내리게도 하시고 올리기도 하시는도다(6).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7).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궁핍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드시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위를 차지하게 하시도다(8)."

  그리고 나서 한나는 여호와는 세상을 지으신 창조주시며, 창조의 힘으로 성도들을 지켜주신다고 고백한다. 그녀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는 무너질 것이며, 여호와께서 대적을 심판하시고, 기름을 부어 세워주신 왕의 뿔을 높이 들어주실 것이라고 고백한다.

  "땅의 기둥들은 여호와의 것이라. 여호와께서 세계를 그 위에 세우셨도다. 그가 그 거룩한 자들의 발을 지키실 것이요, 악인으로 흑암 중에서 잠잠케 하시리니 힘으로는 이길 사람이 없음이로다(9). 여호와를 대적하는 자는 산산이 깨질 것이라. 하늘 우뢰로 그들을 치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땅 끝까지 심판을 베푸시고 자기 왕에게 힘을 주시며, 자기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의 뿔을 높이시리로다(10)."

  한나는 자녀를 낳지 못하여 대적의 비난을 받으며 고통 속에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가 하나님께 부르짖자 하나님은 그 전세가 역전시켜 주셨다. 하나님은 한나에게 자녀를 주시고 한나로 하여금 승리의 노래를 부를 수 있게 해주셨다. 하나님은 자신을 믿고 교만한 말을 하던 브닌나를 낮추시고 침묵하던 한나로 노래하게 하셨다. 이러한 모습은 당시 이스라엘의 상황과 일치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징계로 인해 무능력해져 있었다. 이로 인해 그의 대적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비웃으며 조롱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에 하나님은 그 전세를 역전시켜 주실 것이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입에서 승리의 찬송을 부를 수 있게 해 주실 것이다. 실제로 하나님은 사무엘과 다윗을 통해서 이 일을 이루셨다. 마침내 다윗은 입을 열어 승리의 찬송을 불렀다(삼하 22장 참조). 한나의 노래는 이러한 다윗의 승리를 미리 예고해주고 있다. 그녀의 노래는 "여호와께서 세상을 심판하시고, 자신이 기름부어 세운 왕의 뿔을 높이 드실 것이라"는 말로 끝을 맺고 있다. 이것은 한나의 노래가 다윗의 승리의 노래와 깊은 간계가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 사건 후에 엘가나와 한나는 라마에 있는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성전에 드려진 어린 사무엘은 제사장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기고 있었다(11).  


1-3. 사무엘의 등장(2:11-3:21)

 * 엘리의 아들들과 사무엘(2:12-36)

  새로운 구원자가 등장하기 위해서는 먼저 옛 사람이 물러나야 했다. 이제 사무엘서 기자는 물러가야 할 옛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사무엘서 기자는 엘리의 두 아들이 "불량자"(벨리야알)였으며, "여호와를 알지 않았다"고 말한다(12). "불량자"라고 번역된 말(벨리야알)은 "쓸모 없는, 불량한, 악한, 망령된" 등의 뜻을 가진 말이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 전혀 쓸모가 없는 악하고 명령된 자였다. 백성들을 여호와께 인도하는 제사장이 여호와를 알지 못한다면 누가 백성들을 여호와께로 인도할 수 있겠는가? 이러한 엘리의 아들들의 모습은 가나안의 종교적인 영향이 이스라엘 전면에 침투해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들은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기도 전에 먼저 자기 몫의 제물을 강제로 빼앗는 신성모독 적인 일을 자행했다(13-16). 사무엘서 기자는 이들의 죄가 여호와 앞에 큰 것은 그들이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들은 여호와를 알지 못했기에 여호와께 드리는 제사도 멸시했다. 그리고 이러한 그들의 행위는 하나님 앞에 큰 죄가 되었다.

  엘리가 매우 늙었을 때에 엘리는 자기 아들들이 백성들에게 행한 모든 신성모독 적인 행동에 대해서 듣게 되었다. 또한 엘리는 자기 아들들이 회막에서 수종드는 여인과 동침을 했다는 소식도 듣게 되었다(22). 엘리는 이 말을 듣고 자기 아들들이 여호와께 범죄하여 백성들로 죄를 짓게 한 일에 대해서 책망을 했다. 그는 자기 아들들에게 사람들에게 죄를 지으면, 여호와께서 판단해 주시지만, 여호와께 죄를 지으면 누가 간구하겠느냐? 고 꾸짖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다. 사무엘서 기자는 그들이 이렇게 끝까지 완고한 것은이미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려 그들을 죽이시기로 결정했다는 증거였다고 기록하고 있다(23-25).

  엘리의 아들들이 아버지의 말도 듣지 않고 계속해서 악을 행하게 되자, 하나님의 사람이 엘리를 찾아와서 그의 집에 다음과 같이 심판을 선언했다. "내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한 후에 레위 지파를 선택하여 제사장을 삼고 내 제사 직분을 담당하게 하지 않았느냐? 그러나 너는 나의 제물과 예물을 짓밟았으며, 네 아들들을 나보다 더 귀중히 여겨 가장 좋은 것으로 그들을 살찌게 하였다. 그러므로 너는 더 이상 제사 직분을 담당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멸시할 것이다. 나는 나를 멸시한 네 가족은 모두 다 젊어서 죽을 것이며, 특히 네 두 아들은 한 날에 죽게 될 것이다. 내가 나를 위해 신실한 제사장을 세울 것이며, 그는 내 뜻대로 행할 것이고, 나는 그를 위해 견고한 집을 세울 것이다. 그리고 네 집에 남은 자들은 그를 찾아가서 양식을 위해 제사장 직분을 맡게 될 것이다"(26-36).  

  그러나 새 시대를 이끌어 가게될 사무엘은 이와 달랐다. 어린 사무엘은 세마포 에봇을 입고 제사장의 사환이 되어 여호와 앞에서 제사장들을 섬겼다(18). 한나는 매년에 제사를 드리러 실로에 갈 때마다 작은 겉옷을 지어 사무엘에게 주었다(19). 대제사장 엘리는 이러한 한나를 보고 엘가나와 한나를 축복하여 사무엘 대신에 다른 자녀를 주시도록 기도하였다(20). 그리고 이로 인해 한나는 세 아들과 두 딸을 낳게 되었다(21). 엘리의 아들이 악을 행하고, 이로 인해 심판을 선고받는 동안 아이 사무엘은 점점 자라가면서 여호와와 사람들에게 은총을 더욱 받게 되었다(26).
 

 * 엘리 대신 사무엘이 선지자로 세움을 받음(3:1-21)

  이제 서서히 엘리의 시대가 저물고 사무엘의 시대가 시작되고 있었다. 사무엘서 기자는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섬기고 있을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다(1). 이는 더 이상 하나님께서 엘리를 통해서 자신의 뜻을 나타내지 않으셨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때에 하나님은 엘리 대신 사무엘을 통해서 말씀하시기 시작했다. 엘리의 눈은 점점 더 어두워져 갔으며, 그는 잘 볼 수가 없었기 때문에 자기 처소에 누워 있었다. 어느 날 아직 성막에 있는 하나님의 등불이 꺼지지 않았을 때에 사무엘이 언약궤가 있는 여호와의 전 안에 누워있었다(2-3). 이때에 여호와께서 그 곳에서 사무엘을 부르셨다. 사무엘은 엘리가 자기를 부르는 줄 알고 즉시 일어나서 엘리에게 달려갔다. 그러나 엘 리가 자기를 부르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다기 돌아와서 누워있었다. 이때에 여호와께서 사무엘을 다시 부르셨으며, 사무엘은 다시 일어나서 엘리에게로 갔다. 이번에도 엘리는 자기가 그를 부르지 않았다고 말하면서 사무엘에게 돌아가서 누워라고 하셨다(4-6). 사무엘은 아직 여호와로부터 말씀을 들은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것이 여호와의 음성인 줄을 알지 못했다(7). 사무엘이 세 번째 여호와의 부르심을 받고 엘리에게 달려갔을 때에 엘리는 그것이 여호와의 음성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므로 엘리는 사무엘에게 또 다시 부름을 받으면 다음과 같이 대답하라고 지시했다.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8-9).

  엘리의 말대로 여호와께서 사무엘을 다시 부르셨다. 사무엘은 엘리가 시킨대로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라고 대답했다(10). 하나님은 이때에 사무엘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해 주셨다. "내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놀랄 일을 행할 것이다. 내가 사람을 보내 엘리의 집에 예언한 모든 일을 모두 다 이행할 것이다. 내가 그의 집을 심판하는 것은, 그가 자기 아들들이 저주를 자청하되 그들을 금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엘리 집의 죄악은 어떤 제물로도 영원히 용서를 받지 못하게 될 것이다(11-14)."

  사무엘은 아침까지 여호와의 전에 누워 있다가 여호와의 전의 문을 열었다. 그러나 그는 어제 밤에 들은 말에 대해서 엘리에게 말하기를 두려워했다. 그러자 엘리는 사무엘을 불러서 어제 밤에 여호와께서 하신 말씀을 하나도 빼지 말고 그대로 이야기하라고 말했다. 그리고 사무엘은 그 말을 듣고 어제 잠에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하신 말씀을 하나도 빼지 않고 모두 이야기했다. 그러자 엘리는 그 말을 듣고 이렇게 대답했다. "이는 여호와시니 선하신 소견대로 하실 것이니라(15-18)."

  사무엘은 점점 성장하였으며,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셨다. 여호와께서는 사무엘과 함께 하여 그가 하는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해주셨다. 이러므로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의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무일에 여호와의 선지자로 세움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제 여호와께서는 사무엘을 통해서 실로에서 다시 이스라엘을 위해 나타나시기 시작하셨다(19-21). 그리고 이러한 사무엘의 말은 온 이스라엘에게 전파되었다(4:1(상)).      


1-4. 여호와 앞에 누가 능히 서리요!(4:1(하)-7:17)  
(참고지도)

 * 이스라엘이 블레셋에 패함(4:1-2)

  하나님은 새 시대를 열기 전에 먼저 옛 시대를 마감하셔야 했다. 하나님은 이미 하나님의 사람과 사무엘을 통해서 엘리의 집이 멸망하게 될 것을 예고하셨다. 본문에는 그 예언이 어떻게 성취되었는지를 설명해주고 있다. 이스라엘은 다른 부족들이 쳐들어오면 열두 지파가 하나로 결속이 되어서 그 공격을 막아냈다. 엘리 당시에 블레셋 족속이 이스라엘을 침공했다. 이때에 블레셋 족속은 조직이나 무장, 그리고 훈련에 있어서 탁월했다. 그들은 철로 된 무기를 가지고 있었으며, 청동기를 사용하던 이스라엘에게 큰 위협이 되었다. 이스라엘은 블렛세이 침공한 곳을 보고 각 부족에게 연락하여 군사를 모집했다. 그때에 이스라엘의 군대는 블레셋 사람과 싸우기 위해서 에벤에셀 곁에 진을 쳤고, 블레셋 사람은 아벡에 진을 치고 있었다(1). '에벤에셀'은 그 위치가 분명하지 않으나, 학자들은 이 곳이 야파(Jaffa) 북동쪽에 있던 '마이델 야바'(Majdel Yaba)였다고 주장한다. 이 곳에 언급된 '에벤에셀'은 후에 사무엘이 블레셋 군대를 치고 돌을 세웠던 '미스바'와 는(7:12) 다른 곳으로 보인다. '아벡'(Aphek)은 이스라엘이 진을 쳤던 에벤에셀에서 서쪽으로 약 3.2km 떨어진 곳으로 샤론 평야에 속해 있었다(29:1). 이곳은 원래 가나안 족속들의 아성(牙城)이었는데, 블레셋이 이 곳을 점령한 것을 보면 블레셋 족속이 당시에 얼마나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 블레셋 족속들이 이곳에 진을 친 이유는 자신들의 압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군사적 행동을 취한 이스라엘에 보복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스라엘은 아벡에서 블레셋 군대와 대항하여 전쟁을 했는데, 약 4,000명의 희생자만 내고 퇴각해야 했다(2).
 

 * 이스라엘이 언약궤를 이용하려 함(4:3-11)

  이스라엘이 블레셋에 패한 것을 본 이스라엘의 장로들은 어찌해서 여호와께서 자신들을 패하게 하셨느냐고 물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죄로 인해 자신들이 패배한 것을 알지 못했다. 그러므로 그들은 패배했을 때에 여호수아처럼 하나님 앞에 엎드려서 기도하지 않았다. 그들이 가진 신학은 매우 단순하고 어리석었다. 그들은 여호와의 언약궤에 하나님이 임재하고 있으며, 따라서 그 언약궤만 있으면 승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그들은 실로에 있던 여호와의 언약궤를 아벡으로 가져오기로 결정했다(3). 이스라엘 장로들은 실로에 사람을 보내어 그룹 사이에 있던 언약궤를 아벡으로 가져왔으며, 이때에 홉니와 비느하스도 언약궤와 함께 있었다(4). 여호와의 언약궤가 아벡에 있는 이스라엘의 진으로 들어올 때에 이스라엘 큰 함성을 질렀으며, 이로 인해 땅이 진동하였다(5). 블레셋 족속들은 이스라엘의 함성을 듣고 그들이 왜 함성을 지르는지 궁금해 했다. 그리고 그들은 정탐을 통해 조사한 후에 언약궤가 이스라엘 진에 들어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6). 그들은 여호와의 언약궤가 이스라엘 진에 들어왔다는 소식을 듣고 두려워했다(7). 그들은 이 일로 인해 더욱 마음을 굳게 하고 죽기를 결심하고 전쟁에 임했다(8-9). 이 전쟁은 블레셋 군대의 승리로 끝이 났으며, 이스라엘은 3만 명의 군사를 잃고, 홉니와 비느하스는 전사했으며, 언약궤도 빼앗기고 말았다(10-11). 이스라엘은 자신들을 위해 하나님을 조종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했다.
 

 * 이가봇: 영광이 이스라엘로부터 떠남(4:12-22)

  그 날에 베냐민 사람이 전쟁에서 달려나와 옷을 찢고 머리에 티끌을 무릎 쓰고 실로에 이르게 되었다(12). 그들이 실로에 도착했을 때 엘리는 길 곁에 있는 의자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그때에 언약궤로 인해 마음으로 떨고 있었다. 그때에 전령이 성에 도착해서 이스라엘의 패배 소식을 전하게 되자, 온 성이 부르짖으며 슬퍼했다(13). 엘 리가 무리들의 소리를 듣고 왜 사람들이 소동하는 지 물었다. 그때에 전령이 그에게 와서 엘리에게 사실을 고하였다. 이때에 엘리는 99세였으며 나이가 많아서 앞을 보지 못했다(14-15). 전령은 엘리에게 이스라엘이 전쟁에서 패했으며, 엘리의 두 아들이 전사하고, 언약궤를 빼앗겼다고 보고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충격적인 보고를 들은 엘리는 자기 의자에서 넘어져서, 목이 부러져 죽고 말았다. 이때에 그는 이스라엘의 사사가 된지 40년이 되는 해였다(16-18). 엘리의 며느리이며 비느하스의 아내는 그때에 둘째 아들을 임신하지 9개월이 되었다. 그녀는 언약궤가 빼앗긴 일과 시아버지와 남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갑지기 신통을 느끼고 아이를 해산하게 되었다. 그녀가 아이를 낳고 죽어갈 때에 아이를 받은 여인들이 그가 아들을 낳았다고 위로했다. 그러나 그녀는 그 위로를 듣지 않고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이 낳은 둘째 아들 이름을 "이가봇"이라고 지었다. '이가봇'은 "영광이 떠났다"는 의미를 가진 말이다. 그녀가 둘째 아들의 이름을 "이가봇"이라고 지은 것은 시부와 남편의 죽음과 언약궤를 빼앗겼다는 소식을 듣고 "하나님의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는 것을 감지했기 때문이었다. 그 이후부터 실로는 종교 중심지에서 폐허가 되고 말았다(19-22). 하나님은 타락한 자기 백성을 떠나 잠시 이방인 중에 유랑하셨다. 법궤를 빼앗긴 일은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그들은 이 일로 인해 정말 하나님이 살아 계시며, 자신들이 하나님의 백성인지에 대해 스스로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들은 블레셋 신이 여호와보다, 더 강한 건인지, 아니면 여호와께서 자신들을 버리고 블레셋 사람들의 손을 들어 주신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이일로 인해 온통 나라는 충격과 혼란에 휩싸였다. 이러한 일은 "내가 이스라엘엘 중에 한 일을 행하리니, 그것을 듣는 자마다 두 귀가 울리리라!'(3:11)고 하신 예언의 성취였다.
 

 * 블레셋에서의 언약궤(5:1-12)

   블레셋 인들은 법궤를 에벤에셀에서 아스돗에 있는 다곤 신전에 두었다(1-2). '아스돗'은 블레셋 땅으로 원래 유다 지파에게 분배되었으나(수 15:47) 유다 지파가 정복하지 못하고 블레셋의 영토가 되었다. 고대 근동에서 정복자들은 피정복자들의 신의 형상을 자기가 섬기는 신전에 안치시켰다. 이것은 정복당한 나라의 신이 자기들이 섬기는 신의 통치를 받는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다곤은 메소보다미아, 앗수르, 베니게 지역 등지에서 널리 숭배되어 온 우상이었다. 블레셋  족속은 이 우상을 베니게 족속으로부터 수입하여 자기의 민족 수호신을 삼은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사실은 다곤의 신전이 '아스돗' 뿐만 아니라 '가사'(삿 16:23)를 비롯한 블레셋의 주요 성읍 에 세워진 것을 보아 알 수 있다. 다곤의 이름에 대해서는 두 가지 다른 견해가 있다. 첫째로 '다곤'을 '물고기'란 뜻을 지닌 '다그'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그들은 '다곤'은 '물'과 '물고기'를 토템으로 한 신으로, 자연의 활력 및 무수한 번식력을 상징하는 '풍요의 해양신'으로 보고 있다(Jerome, Kimchi, Keil,  Bochart, Fay). 둘째로 '다곤'을 '곡식', '곡물'이란 뜻을 가진 '다간'에서 유래한 명칭으로 보는 견해이다. 그들은 '다곤'을 땅의 풍요와 땅의 열매를 상징하는 '풍요의 농경신'으로 보고 있다(Albright, Ewald, Bunsen, De Groot, Gaubert). 레이야드가 콜사밧에서 출토한 양각(陽刻) 조각품의 새겨진 그림을 보면 다곤은 상반신은 수염이 난 남자의 모습으로 왕관을 쓰고 있고, 하반신은 물고기의 형상으로 헤엄을 치는 모습으로 되어있다. 이러한 사실은 다곤이 '물' 또는 '물고기와 관계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마리(Mari), 우가릿(Ugarit)에서 발견된 고대 문헌을 보면 블레셋 족속은 이 우상을 곡식의 풍작을 위해 숭배한 것으로 보인다(M. J. Mulder). 따라서 이를 보면 후자의 견해를 지지해 준다. 아마도 블레셋인들은  다곤 신에 해양 민족의 특성을 가미하는 동시에, 가나안의 농경신의 영향을 받아 이 우상을 '곡식의 풍작을 위해' 숭배한 것으로 보인다(L. Wood). 우가릿 문헌을 보면 다곤은 가나안의 농경신인  바알의 아버지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블레셋에서 스스로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셨다. 블레셋 사람들이 다음 날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신전에 들어갔을 때에 그들은 다곤이 언약궤 앞에 얼굴을 대고 절을 하듯이 엎드려 있는 것을 보게되었다. 블레셋인들은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우연히 일어난 것으로 생각하고 다곤 신상을 원래 자리에 놓았다(3). 그러나 그들은 다음 날 아침에 신전에 들어가서 또 다시 다곤 신상이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있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다곤의 머리와 두 손목은 끊어져서 문지방에 있었고, 다곤의 몸둥이만 남아 있었다(4). 이틀 전만 해도 블레셋인들은 다곤이 승리자이고 여호와가 패배자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다곤이 패배자가 되어 여호와께 경배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다곤은 블레셋인들이 보는 앞에서 지존하신 여호와께 드려진 희생 제물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블레셋인들은 이 일을 이상하게 생각하면서도 그냥 넘어갔다. 그러나 이번에는 여호와께서 아스돗 사람들에게 독종의 재앙으로 치셨다(6). 이에 아스돗 사람들이 "여호와의 궤를 자기들이 있는 곳에 두지 못하겠다"고 소리쳤다(7). 아스돗 사람들은 사람을 보내서 블레셋의 지도자들을 아스돗으로 오게하였다. 그리고 여호와의 언약궤를 어떻게 해야 하는 지 물었다. 그러자 블레셋 지도자들은 여호와의 언약궤를 가드로 옮기도록 지시하였다(8). 가드는 가나안의 옛 도시였으나 여호수아에 의해 멸망되었다(수 10:36-39; 11:21-22). 여호수아 때에 이 도시의 거민들은 아낙 자손이라고 부르는 거인족이었다(민 13:33). 여호수아가 이 곳을 정복한 후에도 그들의 일부는 살아남았는데, 성경에서는 그들을 '가드 사람'이라고 불렀다(삼하 6:10-11; 15:18-19,22). 가드는 아스돗(Ashdod)의 동쪽으로 약 20km 떨어진 곳에 있었으며, 성벽이 잘 갖춰진 요새였다. 여호와의 궤가 가드로 옮겨진 후에 이번에는 가드에 큰 환난이 일어나게 되었다. 이로 인해 가드 성읍 사람들은 큰 자나 적은 자를 막론하고 모두 독종에 시달리게 되었다(9). 그러자 블레셋 사람들은 여호와의 궤를 다시 에그론으로 옮겼다. 에그론은 아스돗의 북동쪽으로 약 20km 지점에 있던 블레셋의 다섯 성읍 중의 하나였다. 이 성은 유다 지파에게 분배되었으며, 사사시대에 와서 유다 지파에 의해 정복되었다(삿 1:18).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 성은 다시 블레셋의 영토가 되고 말았다. 여호와의 궤가 에그론으로 옮겨지게 되자, 이번에는 에그론에서 난리가 나게 되었다. 그러므로 에그론 성 사람들은 여호와의 궤를 원래 처소로 보내라고 아우성을 쳤다(10-11). 이와 같이 여호와의 궤가 가는 곳마다 그 성 사람들이 재앙으로 죽거나, 아니면 독종으로 고생을 하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블레셋 성읍 사람들의 부르짖음이 하늘에 사무치게 되었다(12).
 

 * 돌아온 언약궤(6:1-7:2)

  이렇게 해서 여호와의 궤는 블레셋 지방에서 7달을 지내게 되었다(1). 여기에서 "지방"(사데)이라는 말은 '들', '밭'을 의미한다. 아마도 당시에 블레셋 사람들은 저주를 두려워해서 언약궤를 사람이 살지 않은 빈들에 보관했던 것 같다. 성경에서 숫자 '일곱'이 '완전함'을 상징하는 점을 생각하면 "일곱 달"은 하나님의 뜻을 나타낼 시간이 되었음을 암시해주고 있다. 블레셋 사람들은 더 이상 언약궤를 방치할 수 없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제사장들과 복술 자들을 불러서 여호와의 궤를 이스라엘로 돌려보낼 방법에 대해서 질문했다(2). 여기에서 "제사장들"은 다곤의 의식을 집행하는 자들이었다. 그리고 '복술자'(코세밈)는 작은 나무 가지들을 흔들다가 그것이 나뉘어져 떨어지는 것을 보고 점을 치던 자들이었다(민 23:23; 신 18:10). 블레셋 방백들의 재앙을 받지 않고  언약궤를 이스라엘로 돌려보낼 수 있는 방법을 물었다. 제사장들과 복술자들은 여호와의 언약궤를 돌려보낼 때에 그대로 보내지 말고, 속건제를 드려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실수에 대한 일정한 배상을 지불하고 언약궤를 돌려보내야 병도 낫고, 또 여호와의 언약궤가 그들에게 재앙을 내린 이유도 알게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3). 고대 근동 지역에서는 실수로 타인의 소유물이나 사람을 취한 경우에 잘못 취한 물건이나 사람을 돌려보내면서 실수에 따른 보상금을 지불하는 풍습이 있었다(Klein). 그들이 여호와께 속건제를 드리라고 한 것을 보면 당시 블레셋 사람들은 스스로 자신들이 하나님께 무언가 잘못을 범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속건제'는 실수로 인해 하나님의 물건이나 사람의 물건을 범했을 때에 드리던 보상제사이다. 여기에 사용된 속건제는 '배상'이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블레셋 술사들은 이러한 배상을 통해서 당시에 전염된 독종에서 벗어나기를 원했다. 블레셋 술사들은 자신들이 여호와께 배상을 드린 후에 하나님의 진노가 멈춰지면, 자신들의 죄로 인해 이러한 재앙이 내려진 것임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정치 지도바들은 제사장들에게 무엇으로 손건제물을 삼아야 하는지 물었다. 그러자 제사장들은 블레셋 지도자의 숫자와, 재앙을 내린 상태를 따라서 5개의 금 독종과 금 쥐로 손곤제물을 삼으라고 조언했다(4). 블레셋은 다섯 개의 주요 도시 국가 형태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각 도시는 자체의 지도자에 의해 다스려지고 있었다. 여기에서 '금 독종'은 여호와의  궤로 인해 블레셋에 임한 독종의 모양을 금으로 만든 것이고, '금 쥐'는 독종을 전염시킨 쥐를 금으로 만든 것이다.  블레셋 술사들의 이러한 처방은 당시 이방 문화의 일반적인 관습이었다. 고대 이방인들은 자신들이 섬기는 신에게 어떤 소망을 빌거나, 감사를 드릴 때에 그 내용을 형상화하여  바치는 관습이 있었다. 예를 들어 질병의 치료받기 원하는 자는 그 질병이 걸린 모습을 금이나 은으로 만들어 신에게 드렸고, 난파선에서 구출된 자가 자신의 옷을 신전에 바쳤으며, 해방된 노예는 쇠고랑을  신전에 바쳤고, 승리한 검투사는 자신의  검을  신에게  바치는 경우가 있었다. 블레셋 복술자들은 이전에 애굽의 예를 들어 이 일을 속히 실행할 것을 권고했다. 그들은 이전에 애굽 왕 바로가 끝까지 이스라엘 사람들을 내보내지 않다가 10대 재앙으로 완전히 멸망한 일을 지도자들에게 상기시켜 주었다(5-6). 하나님은 이러한 방식으로 여호와를 알지 못하던 블레셋 사람들 �에서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셨다.  

  블레셋 복술자들은 지도자들에게 새 수레를 만들고, 멍에를 메어보지 못한 젖이 나는 소 둘을 데려다가 그 수레를 끌게 하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여호와의 궤를 그 수레에 싣고 속건제물은 상자에 담아 언약궤 곁에 두라고 했다. 블레셋 복술 자들은 이때에 만일 그 소가 이끄는 수레가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벧세메스로 가면, 재앙을 내린 것이 여호와임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만일 그 소들이 그 수레를 벧세메스로 이끌고 가지 않으면 그들에게내린 재앙이 우연히 일어난 것임을 증거할 것이라고 충고했다(7-10). 여기에서 '새 수레'는 한 번도 세속적 목적을 위해 사용된 적이 없는 수레를 가리킨다. 이러한 수레는 새로 만들어야만 구할 수 있었다. 또한 멍에를 메어 보지 아니한 소도 세속적 목적을 위해서 사용되지 않은 소를 가리킨다(민 19:2). 젖 나는 소 는 새끼가 딸린 암소를 가리킨다. 그러면 블레셋 복술 자들은 왜 법궤를 운반할 짐승으로 이러한 암소를 택하라고 권고했는가? 블레셋 제사장들에게 있어 주된 관심사 중의 하나는 자기에게 내려진 재앙이 정말로 여호와로 인해 온 것인지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수레의 진행 방향을 보고 그 재앙의 근원을 확인하려고 했다. 새끼가 딸린 암소는 그대로 두면 당연히 벧세메스로 가지 않고 자기 새끼가 있는 곳으로 가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 암소가 새끼를 두고 벧세베스로 간다면 여기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잇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블레셋 복술자들은 새끼가 있어 젖을 물리는 암소를 법궤 운반용으로 택하도록 권고했다.

  블레셋 방백들은 이러한 조언을 받아들여 젖 나는 소 두 마리로 하여금 새 수레를 이끌게 하고, 그 수레에 여호와의 언약궤와 금 독종과 금 쥐를 담은 상자를 실었다. 이때에 수레를 맨 두 암소는 울면서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벧세메스를 향해 갔다. 이때에 암소가 운 것은 자기 새끼를 떠나야만 하는 슬픔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소는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여호와의 궤를 벧세메스까지 운반해야만 했기에 울면서도 벧세메스로 가아� 했다. 이때에 블레셋 방백들은 이스라엘의 경계인 벧세메스경계까지 그 암소를 지켜보면서 뒤따라갔다(11-13). 이렇게 해서 언약궤는 블레셋 땅으로 간지 일곱 달만에 다시 벧세메스로 돌아오게 되었다. 벧세메스 사람들이 골짜기에서 밀을 베다가 언약궤가 돌아오는 것을 보고 심히 기뻐하였다. 그때에 구 수레는 벧세메스 사람 여호수아의 밭 중에 큰 돌이 있는 곳에 멈추어 섰다. 이를 본 수레들은 수레의 나무를 패고, 소를 번제로 드렸다. 그리고 레위인들은 여호와의 궤와 금쥐와 금 독종을 담은 상자를 내려다가 큰 돌 위에 두었다. 그리고 그 날 벧세메스 사람들은 여호와께 번제와 다른 제사를 드렸다. 그리고 블레셋의 다섯 방백은 이 광경을 지켜보고 에그론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블레셋 방백들은 이를 통해서 그 동안 자기 나라에 내려진 재앙들이 여호와의 연약궤로 인한 것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나님은 이렇게 해서 스스로 블레셋 땅에서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셨다.  

  그러나 벧세메스 사람들이 언약궤를 보다가 (오만) 칠십 명이 죽는 사건이 일어났다. 여호와의 궤를 들여다보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범하는 일이기 때문에 엄격히 금지되어 있었다(민 4:5, 6, 15-20). 그러나 벧세메스 사람들은 이를 어기고 호기심을 이기지 못해서 내부를 들여다 보고 말았다. 하나님은 언약궤를 전리품으로 취급한 블레셋을 징벌하셨듯이(5:1-2), 그 궤를 세속적 구경거리로 삼은 벧세메스 사람들도 엄히 징벌하셨다(19). 이는 이방인 뿐 아니라 성도들에게 있어서도 하나님은 경외할 대상임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서 '오만'이라는 숫자가 괄호 안에 기록된 것은 필사자의 실수로 쓰여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아인'(70)을 '눈'(50,000)으로 잘못 보았을지도 모른다(Kennicott). 후일 이스라엘의 수도 예루살렘의 인구가 최고로 번성했을 때에 7만이엇다는 것을 생각하면 '칠십 인'이 죽었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Keil, Smith, Fay). 유대의 역사가 요세 푸스 역시 이 때에 죽은 사람이 '칠십 인'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Antiquities,  vi, 1, 4).  이로 인해 가족을 잃은 백성들은 크게 애곡하였다. 이러한 사건은 각 지역 주민들에게 큰 충격이 되고도 남았다. 그들은 이러한 징계를 통해서 "여호와의 거룩성"을 깊이 깨닫게 되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 거룩하신 하나님 여호와 앞에 누가 능히 설 수 있겠느냐?"고 부르짖었다. 그들은 이렇게 두려운 "여호와의 궤를 누구에게 보내야 하느냐?"고 부르짖었다(20). 법궤를 경솔히 돌여다 본 범죄의 대가로 하나님으로부터 징계를 받은 벧세메스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전과 같은 징계가 또 내려질까 두려워한 나머지 그 궤를 다른 지역으로 보내려 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사자들을 기럇여아림에 보내어 여호와의 언약궤를 가져가라고 기별하였다(21).  '기럇여아림'은 '숲의 성읍'이란 뜻으로 오늘날의 '쿠르엣 엘 에납'으로  추정된다(Robinson). 당시 이 성읍은 벧세메스 북동쪽 약 145km, 예루살렘 북서쪽 약 13km지점에 있었다. 그러면 벧세메스 사람들이 왜 다른 성읍들을 제치고 하필 이면 왜 기럇여아림으로 언약궤를 보내려 했을까?  그것은 그 당시 기럇여아림의 지정학적 위치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 당시 기럇여아림이나 벧세메스는 모두 블레셋의 정치적 영향 아래 놓여 있었다. 다윗이 르바임 골짜기를 완전히 수복시키기 전까지 이 두 성은 르바임 골짜기를 점령하고 있었던 블레셋 사람들의 영향권 아래 있었다. 그러므로 블레셋의 영향권 아래 있었던 벧세메스 사람들은 블레셋 사람들의 신경을 건드리지 않기 위하여 마찬가지로 블레셋의 영향권 아래 있던 기럇여아림으로 언약궤를 보내려 했을 것이다. 그들이 기럇여아림 사람들에게 '내려오라'고 말한 것은 벧세메스가 해발 305m, 기럇여아림이 해발 762m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다. 기럇여아림 사람들은 이러한 기별을 받고 여호와의 궤를 옮겨 산에 살던 아비나답의 집에 들여놓았다. 그리고 그의 아들 엘리아살을 거룩히 구별하여 그 언약궤를 지키게 하였다. 그 후 여호와의 언약궤는 다윗이 이 궤를 예루살렘에 옮길 때까지 20년 동안 그곳에 머물러 있었다. 그리고 여호와의 언약 궤가 이 곳에 머물러 있는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를 간절하게 사모하게 되었다(7:1-2).

 * 법궤의 이동 경로:  (참고지도)
 1) 실로(여호수아-엘리 때까지)
 2) 에벤에셀과 아벡의 전쟁터
 3) 아스돗 - 4) 가드 - 5) 에그론(약 7개월)
 6) 벧세메스
 7) 기럇여아림의 아비나답의 집(이 곳에서 그 후 20년 동안 머묾).
 

 * 마지막 사사 사무엘(7:3-17)  (참고지도)

  여호와께서는 비록 따끔한 손길로 이스라엘을 징계하셨지만, 그렇다고 이스라엘을 완전히 버리신 것은 아니었다. 하나님은 자신의 임재의 상징인 언약궤를 그들로부터 분리시키셨지만, 그래도 이스라엘은 그대로 가나안에 두셨다. 특히 엘리와 그 아들들이 죽으면서 사무엘이 사사가 된 것은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불행 중 다행이었다. 여호와의 언약궤가 기럇여아림에 있는 동안 온 백성들은 여호와를 간절히 사모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을 통해서 다시 그들에게 구원의 길을 다시 열어 주셨다. 사무엘이 종교 지도자가 된 후에 그는 이스라엘 온 족속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 섬기라!"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렇게 하면 "여호와께서 블레셋의 손에서 그들을 건져주실 것이라"고 선포했다(3).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무엘의 말을 듣고 순종하여 바알들과 아스다롯을 제거하고 여호와만 섬기게 되었다(4).

  어느 날 사무엘은 온 이스라엘 족속을 미스바로 모이도록 지시했다. 사무엘은 그 곳에서 이스라엘을 위해 기도하겠다고 선포했다(5). 이 지시를 따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비스바에 모이게 되었다. 그리고 그 곳에서 물을 길어 여호와 앞에 붓고, 금식하면서 여호와께 자신들이 지은 죄를 회개했다(6). 그러나 이때에 이스라엘이 미스바에 모였다는 소식을 들은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치기 위해 미스바로 올라왔다(7). 블레셋 군사들을 본 이스라엘 백성들은 두려워 하여 사무엘에게 쉬지 말고 이스라엘을 위해 기도하여, 그들을 구원해 달라고 요청했다(8). 이에 사무엘은 젖먹은 어린 양을 취해 온전한 번제를 드렸다. 사무엘이 온전한 번제를 드린 후에 이스라엘을 위해 여호와께 기도를 했으며, 여호와께서 그 기도에 응답해 주셨다(9). 사무엘이 번제를 드릴 때에 블레셋 군사들이 이스라엘을 치기 위해 접근해 왔다. 그리고 그 때에 여호와께서 블레셋 사람에게 큰 우뢰를 발하여 그들을 어지럽게 하셨다. 그리고 이로 인해 이스라엘은 블레셋 군사를 치고 승리할 수 있게 되었다. 이스라엘 군사들은 이 날에 미스바에서부터 벧갈까지 블레셋 군사들을 공격하였다(10-11). 그리고 사무엘은 미스바와 센 사이에 돌을 세운 후에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고 선포했다. 이로 인해 이 고시 이름은 "에벤에셀"(도움의 돌)이 되었다(12).

  이 후로 블레셋 군사들은 더 이상 이스라엘의 영토 안으로 들어오지 못했다. 그리고 여호와의 손이 사무엘이 사는 동안에 블레셋의 침입을 막아 주셨다(13). 이로 인해 이스라엘은 블레셋에게 빼앗겼던 에그론부터 가드까지의 영토를 다시 회복할 수 있었다(14). 그리고 이스라엘은 반목했던 아모리 사람들과도 다시 평화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그 후 사무엘은 살아 있는 날 동안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어 그들을 다스리게 되었다. 그는 해마다 벧엘과, 길갈, 그리고 미스바를 순화하면서 이스라엘을 다스렸다. 그리고 그는 이 일을 마친 후에 다시 자기 집이 있는 "라마"로 돌아왔다. 사무엘은 그 곳에서 여호와를 위해 단을 쌓았으며, 그 곳을 다스렸다. 사무엘은 라마를 본거지로 하여 벧엘과 길갈과 미스바를 순회하며 교육을 실시했고, 말씀으로 이스라엘을 다스렸다(15-17). 사무엘은 마지막 사사로서 이스라엘을 훌륭하게 인도했으며, 그들을 올바르게 교육했다.

 

 

                                                                                                     출처:http://www.biblenara.org/onbible/onbible57.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