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4/07/16 금요 심야 (설교: 정은주목사) | |
훈련의 시간표 (삼상 19:1~12) |
[서론]
옆의 분들과 인사하시기 바랍니다.“하나님은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십니다.”
다윗이 하나님으로부터 이스라엘의 왕으로 지명되어서 선지자 사무엘에 의해서 기름부음을 받은 후 이스라엘 백성 앞에 공식적으로 치룬 데뷔전이 골리앗과의 싸움입니다. 하나님의 대한 절대적 분명한 믿음과 평상시에 준비된 전문성을 바탕으로 다윗은 골리앗을 한판승으로 이기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국민적 영웅으로 떠오르게 된것입니다.
그러나 사울의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의 죽인 자는 만만이로다 라는 노래와 함께 개선했지만 이것이 오히려 다윗이 사울왕으로부터 핍박을 당하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자신의 자리에 대한 위협을 느낀 사울왕은 이 이후로 틈만 나면 어떻게 해서든지 다윗을 죽이려는 마음을 품고 있었습니다.
18장 이후로부터 사무엘상 마지막장 사울왕이 죽게되기까지, 다윗의 삶이라고 하는 것은 죽음을 피하고 도망다니는 도피의 삶을 살게됩니다. 다윗이 20장 3절에서 요나단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자신과 사망의 사이는 한걸음 차이다. 언제 나는 죽을지 모른다. 왕이 죽이려고 이렇게 따라다니니 죽음과 나는 한걸음 차이다.” 그 정도로 다윗은 죽음의 위협 속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다윗의 고난은 하나님 앞에서 선택함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쓰임받아야 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쓰시기 합당한 재목으로 하나님이 쓰시기 위한 훈련의 시간표였다는 것을 뒤에 깨닫게 됩니다. 한마디로, 다윗이 왕으로써의 그릇을 준비하는 혹독한 훈련의 과정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군대 가면 군인들이 가장 싫어하고 두려워하는 훈련이 유격훈련입니다. 군인들 중에 꼭 1년에 한번씩 해야하는데 유격훈련을 받으면 온 몸에 멍이 돕니다. 훈련을 아주 강하게 받습니다. 훈련받고 나면 가슴에 유격훈련 받았다는 표시를 붙입니다. 붙이고나면 군인들이 어깨에 힘이 들어가요. 나도 유격 훈련받았다는 자부심이 생깁니다.
여러분 영적인 유격훈련 받고 있는 분들 많을 것입니다. 남들이 상상할 수도 없는 두 번 다시 쳐다보기도 싫은 영적 유격훈련을 받는데, 다윗이 이런 훈련을 받았습니다. 언제 죽을지 모를만큼 이러한 고난을 받는데, 하나님이 허락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 여호와의 부리신 악신이 사울에게 들어가면 다윗에게 창이 날라 오는 것입니다. 이것을 피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허락입니다. 여러분이 고난과 연단, 지금 여러분이 하나님께서 쓰시기 위해 필요한 그릇으로, 진정한 영적인 군사로 거듭나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과정인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을 개개인적으로 이모양 저모양으로 연단 훈련 시키고 있을 것입니다.
그것을 ‘나는 죄가 많아서, 재수가 없어서, 인간관계에 복이 없어서, 덕이 없어서, 부모를 잘 못 만나서, 머리가 나빠서, 성격이 너무 나빠서’ 라고 여러분에게 책임전가하지 마세요. 여러분을 낳으신 분은 주님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여러분을 독특한 걸작품으로 만들어놨기 때문에 성격이 급하면 급한 대로, 느리면 느린대로, 겁이 많으면 많은 대로, 대범하면 대범한대로 하나님은 다 각기 다른 모양으로 만드셨습니다. 그런 모든 것들을 하나님이 거기에 맞게 사용하시기 위해서 여러분을 훈련시키신단 말입니다. 그래서 훈련과 연단은 여러분이 과정 속에 있는 것입니다.
다윗이 지금 왕이 되기 위한 과정 속에 있는 겁니다. 왕이 되어서도 어떻게 하나님을 섬길 것인가. 하나님은 알파와 오메가, 시작과 나중이라, 처음과 끝이시기 때문에 다 아시는 하나님은 과정 속에서 준비시키신단 말입니다. 이것이 끝이 아닙니다. 과정 속에 있기 때문에 이 과정을 잘 견디고 잘 넘어설 수 있도록 늘 말씀인도 받으시기 바랍니다. 성령인도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한 시대에 쓰임받는 하나님의 사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1. 고난속의 숨은 계획
사울왕의 다윗을 죽이려는 시도는 사무엘상 18장에서부터 시작이 됩니다. 골리앗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이후에 다윗은 왕궁에서 생활하게 되는데, 왕궁생활을 시작한 날부터 사울왕으로부터의 공격이 시작됩니다. 다윗이 사울왕을 위해 수금을 타고 있을 때 사울왕이 그냥 창을 던집니다. 여러분, 사람이 너무 미워지면 악신이 들어온 줄 알면 됩니다. 자신을 위해서 악기를 다루고 연주하고 있는데 그 사람을 죽이려고 하니 사울왕이 제정신이 아닙니다. 사람을 자꾸 미워하면 본인의 수준과 인격과 관계없이 악신이 들어옵니다. 사울왕이 맨정신으로 돌아오면 절대 다윗 안죽이겠다고 그러잖아요. 악신이 들어오면, 미워하는 마음이 있으면, 자기의 한계와 인격을 넘어서서 잡혀버리면 이상한 짓을 한단 말입니다. 다윗이 이런 죽음을 두 번 피합니다. 이후에 사울왕의 모든 생각과 관심은 ‘어떻게 하면 다윗을 죽일까’ 입니다.
사울이 그 아들 요나단과 그 모든 신하에게 다윗을 죽이라 말하였더니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다윗을 심히 기뻐하므로 그가 다윗에게 고하여 가로되 내 부친 사울이 너를 죽이기를 꾀하시느니라 그러므로 이제 청하노니 아침에 조심하여 은밀한 곳에 숨어 있으라(1-2)
이제는 사울왕이 공개적으로 다윗을 죽이는 것을 발표해버립니다. ‘다윗을 죽여라’ 그래서 다윗이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도피생활이 시작됩니다. 본문에 보면 하나님께서 다윗의 목숨을 구해주는 두 명의 보호자를 붙여주시는데, 한사람은 요나단이고 한사람은 미갈입니다. 참 아이러니칼하게도 이 두 사람은 사울왕의 아들, 딸입니다. 아버지는 다윗을 죽이려고 눈에 불을 켜고 있고, 자식들은 숨기려고 눈에 불을 켜고 있습니다. 요나단은 사울왕이 신하들에게 다윗을 죽이라고 공개적으로 명할 때 다윗을 찾아가서 숨으라고 전달합니다. 또 미갈은 다윗을 죽이기 위해서 사울이 보낸 자객들을 재치있게 속이고 다윗의 목숨을 건집니다.
이런 일련의 상황 속에서 다윗이 도망가는데만 정신이 팔렸던 것이 아닙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 앞에서 늘 기도했습니다. 시편 59편에 보면 이 장면에서 기도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다윗이 사울왕이 보낸 자객들로 인해서 사면초가에 빠져있을 때 하나님께 간구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나의 하나님이여 내 원수에게서 나를 건지시고 일어나 치려는 자에게서 나를 높이 드소서 이렇게 기도를 시작하면서 주는 나의 산성이시며 나의 환난 날에 피난처심이니이다 나의 힘이시여 내가 주께 찬송하오리니 하나님은 나의 산성이시며 나를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이심이니이다
이렇게 마무리를 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고난을 주시는 이유. 질병의 고난, 물질의 고난, 인간관계의 고난, 살아가면서 오는 고난. 이런 고난을 주시는 이유는 한마디로 다윗처럼 기도하도록 주시는 것입니다. 고난 많이 당한 사람은 기도가 다릅니다. 살아가면서 눈물로 고통 중에 울며 밤을 새운 사람들의 기도는 다릅니다. 어려움이 오면 다윗처럼 기도하라는 사인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여러분 HOT-LINE이란 것을 아실 겁니다. 긴급직통전화입니다. 원래 1963년 3월에 미국의 워싱턴과 소련의 모스코바 사이에 개설된 미소 양국 사이의 긴급연락용 직통 통신용 전화입니다. 두 나라가 그 당시 세계 최강대국이니 직통전화를 놨습니다. 긴급한 상황이 일어날 때 서로 오해가 있으면 풀고 제3차대전을 안 일으키기 위해서 서로 대화할 수 있도록 구축해놓은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14일 날 북한이 북방한계선을 넘어왔습니다. 우리나라도 북한과의 무력충돌을 막기 위해서 서울와 평양에 HOT-LINE을 설치해놨는데 이번에 넘어와서 왜 넘어왔느냐고 북한측에 두드렸습니다. 그런데 응답이 없어요. 그것을 헛라인이라고 합니다. 핫라인이 헛라인 되버린 것입니다. 아무리 해도 응답이 없어요.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여러분의 기도는 세상통신과는 다르게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통하는 영적인 통화는 헛라인이 없습니다. 언제나 통화가 되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통화중, 부재중이 없습니다. 언제나 하나님 앞에 기도할때마다 완벽한 이동통신이기 때문에, 정시기도, 무시기도 언제나 여러분이 통화가 가능합니다. 이 통화는 오래통화해도 통화비가 안나옵니다. 오래 통화할수록 이상하게 상급이 나옵니다. 오래 통화할수록 응답의 선물이 나오는 것이 특징입니다.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정말 기도하는 기도는 하늘 보좌를 움직이는 능력이 있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유일한 길, 예수이름으로 기도하면 하나님은 만나주고, 예수이름으로 기도하면 성령이 여러분 인격, 수준과 관계없이 여러분에게 역사하시고 인도하시고 지켜주십니다.
그래서 언제나 문제와 사건을 앞에 놓고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통화하시기 바랍니다. 요즘 신문을 보니 학생들 중에 핸드폰이 손에 없으면 불안하다는 사람이 20%라는 통계조사가 나왔습니다. 누구에게라도 전화할 수 있어야 되는데 손에 핸드폰이 없으면 불안하다고 해서 거의 가 핸드폰 꼭 가지고 다닙니다. 왜? 통화하려고. 여러분 영적 핸드폰 늘 가지고 다니시기 바랍니다. 영적 핸드폰이 늘 가슴속에 성령으로 임재해 있는데 하루종일 한통화도 안씁니다. 약이 안달아요. 여러분이 하루에 최하 세 통화는 하시기 바랍니다.
18절 이후에 보면 다윗이 사울왕이 보낸 자객을 피해 도망친 곳이 사무엘 선지자가 있는 곳입니다. 다윗은 사무엘을 만나자마자 자초지종을 다 설명합니다. 다윗이 사무엘을 찾아간 이유가 무엇입니까? 지금 쫓겨서 도망가는데 사무엘이 왕을 이길 수 있습니까? 숨겨줄 능력이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 수준아닙니다. 선지자 사무엘의 사역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제사를 드리는 역할을 하는 것이 사무엘입니다. 다윗은 문제와 사건의 해답이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고 말씀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무엘을 만나러 가면 하나님의 말씀을 주실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왜 이 어려움이 왔는지, 이 어려움을 내가 어떻게 이겨 나가야 하는지 내가 해답을 찾아야지’ 생각한 것입니다.
여러분 문제와 해답은 예배 속에 있는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문제를 가지고 예배에 나오면 강단을 통해서 하나님이 여러분의 한 사람 한 사람 문제의 모든 것을 진단하시고 아시고 해답을 주십니다. 이것이 바로 다윗이 사무엘을 찾아간 것과 같은 것입니다. 문제가 있으면 여러분이 예배를 통해서 모든 것을 간파해야 합니다. 고난과 역경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말씀을 더욱 든든히 붙잡는 시간표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배회복이 중요합니다. 문제가 올수록 고난이 올수록 예배를 놓쳐서는 절대 안됩니다. 이리저리 분주하게 문제를 해결해보겠다고 돌아다니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하나님 앞에 진정한 예배, 거룩한 예배, 산제사를 드리는 이것이 중요합니다. 예배실패하는 사람은 아무것도 안됩니다.
예배의 중요성을 모르는 사람은 기도안하고 헌금안하고 말씀적용 안할 것이니 그냥 자기마음대로 자기인격과 수준대로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니 결국 나중에 교회의 말썽꾼, 문제아가 됩니다. 그런 사람들이 해외 나가면 꼭 말썽을 일으킵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응답받는데 혼자 공허해서 이소리 저소리 잡소리, 허둥지둥 온갖 사단의 심부름을 다하고, 주위 사람들을 아프게 하고 힘들게 하고 괴롭히고, 자기 야망과 욕심 채우려고 온갖 추태를 다 부리고 결국 남는 것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모든 문제와 사건을 사람통해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사람 눈치보지 말고 주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예배입니다.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은 여러분을 치유하시고 응답하시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가장 원하시는 것입니다. 삶의 어려움이 있거나 역경 중에 있는 사람을 향하여서 하나님은 꼭 말씀해주십니다. 개인적으로 만날 것 없어요. 나는 도대체 예배를 드려도 안되고, 내가 어떻게 하면 되겠냐? 여러분이 예배를 통해 모든 문제 해결받으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가장 정확한 응답입니다. 개인적으로 만나면 또 그 사람의 감정, 기분, 선입견따라 편파적으로 꼭 점쟁이 찾아가는 것과 똑같은 것 아닙니까? 예배는 하나님께 드려지기 때문에, 하나님이 인정한 모임이기 때문에, 여러분이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계획을 붙잡고 인생의 기준을 잡으시기 바랍니다. 기본적으로 하나님과 내가 만나는 예배의 감격과 은혜가 없는 사람에게 문제는 계속 생겨날 것이고 하나도 해결되지 않을 것입니다. 어떤 역경과 염려와 걱정도 예배시간에 다 해답받고 위로받고 치유받고 축복받으시기 바랍니다.
2. 공동체 리더 다윗
21장 10절 이후에 보면 국내에 있다가는 아무래도 생명의 위협이 있다고 판단한 다윗이 블레셋으로 떠납니다. 블레셋에서 다윗이 가드라는 지역으로 갔는데 가드 왕 아기스의 신하들이 다윗의 존재를 알아봤습니다. 그 지역에까지도 사울의 죽인자는 천천이요 다윗이 죽인자는 만만이로다 하는 노래가 유행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금방 다윗을 알아보았습니다. 이 위기가 왔을 때 다윗은 입에 침을 흘려가면서 미친 척 했습니다. 이렇게 미친 자를 죽여서 뭐하겠느냐해서 살아나오는 수치를 당했습니다. 그러나 시34편에 나오는 고백처럼 속히 일어나서 하나님께 나아가서 신앙을 회복합니다. 다윗이 위대하다고 하는 것은 그가 실수가 없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가 온전히 성공의 삶을 살았다는 것이 아닙니다. 다윗은 넘어져도 재빨리 넘어져도 재빨리 일어서서 하나님께 나아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세상 속에서 자빠질 때도 있고 넘어질 때도 있고 실수할 때도 있습니다. 그럴수록 더 하나님께 빨리 나오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다윗처럼 쓰임받을 수가 있습니다. 가롯유다와 베드로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가롯유다도 예수님을 배신했고 베드로는 더더구나 세 번이나 배신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통회자복하고 가슴을 치고 옷을 찢으면서 내가 사랑하는 주님을 배신했다고 부인했다고 울며 가슴을 쳤습니다. 그러나 가롯유다는 주님을 배신한 것이 너무 괴로워서 목을 메어 자살하고 배가 터져 죽었습니다. 여러분이 똑같이 죄를 지었다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 빨리 나와서 무릎 꿇고 예배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겁니다. ‘내가 그래도 양심이 있지 어떻게 교회 나가겠냐 나같이 더러운 놈이 어떻게 은혜받고 축복받겠냐’ 하면서 인생을 포기하면 안됩니다. 그것은 가롯유다입니다. 하나님 앞에 여러분이 어려울 때마다 뛰쳐나와 무릎꿇으면 응답받는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다윗은 서둘러 블레셋을 떠나 이스라엘로 돌아오는데 아굴람이라는 굴로 그 은신처를 삼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이 그 곳을 떠나 아둘람굴로 도망하매 그 형제와 아비의 온 집이 듣고는 그리로 내려가서 그에게 이르렀고 환난당한 모든 자와 빚진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 장관이 되었는데 그와 함께 한 자가 사백 명 가량이었더라 (22:1~2)다윗이 블레셋을 떠나서 아둘람이라는 굴로 은신을 하고 있다는 소식이 그 식구들에게 전해져서 그 가족들이 다 왔습니다. 그리고 다윗처럼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이 많았습니다. 사울왕을 통해서 억울한 상처를 받은 많은 사람들이 소문을 듣고 아둘람 굴로 모이기로 시작했는데 그 숫자가 4백명 가량되었습니다. 아둘람 공동체가 생긴 겁니다. 각종 상처받은 사람들이 모여있는 공동체를 이루었습니다. 이들을 이해하고 수용하고 상처받은 억울한 사람들을 감싸주고 다 하나되게 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다윗에게는 이런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모아서 훈련시키는 겁니다. 왜냐하면 다윗은 공동체를 한 적이 없습니다. 함께 살아본 적이 없이 언제나 다윗은 혼자 있었습니다. 늘 들에서 혼자 양치면서 외롭게 살았습니다. 운동선수들이 얼마나 외로운 투쟁을 하는지 아십니까? 운동선수들이 하루라도 운동을 하지 않으면 실력이 늘지 않고 남들에게 뒤쳐집니다. 우리나라의 유명한 골프선수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하루라도 골프연습을 안하면 하루만이라도 쉬었으면” 매일매일 똑같은 운동 반복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줄 아십니까? 다윗이 얼마나 혼자 있었으면 늘 돌 던지는 연습만 한겁니다. 그러다보니 같이 어울려서 함께 치유하고 위로하고 감싸주고 위로하고 이렇게 공동체를 해 본적이 없었습니다. 이런 것을 해야 왕이 될 수 있는데 말입니다. 그래서 공동체를 해 본적이 없는 다윗에게 하나님이 공동체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때로는 여러분이 혼자 있고 싶은데 이상하게 사람들이 몰려오고 집에 자꾸 식구들이 올수가 있습니다. 그때는 나를 갱신하라고 하는 하나님의 사인인줄 믿으면 됩니다. ‘나는 교인들이 싫은데 자꾸 전도회에서 연락이 오고 교구에서 연락이 오고 아주 귀찮아.’ 귀찮기야 귀찮죠. 하지만 그것이 여러분을 치유하는 시간표임을 믿어야 합니다. ‘이 못된 외골수 성격, 혼자있기 좋아하는 성격을 치유해서 공동체 속에서 원활하게 모든 사람들을 포용하고 이해하는 함께 어울리는 성격으로 치유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나를 훈련시키시는 구나.’ 하고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공동체 시대입니다. 나혼자 잘났다고 독단적으로 행동하고 내 신앙이 바르고 남이 틀렸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엄청 치유받아야 합니다. I'm OK! You are OK! 가 되어야 합니다. 나도 귀한 존재고 너도 하나님 앞에서 귀한 존재이구나. 상대를 인정해야 합니다. 상대편 형편과 환경을 모르고 그 순간 내 감정과 생각에 빠져버리면 공동체 유지하는데 있어서 상처받은 사람이 생깁니다. 공동체가 쉬운 것이 아닙니다. 서로서로 표현이 다르고 체질이 다르고 살아온 과정들이 다르기 때문에 Unity를 이루는 이것이 쉬운 것이 아닙니다. 다윗이 지금 큰 경험을 하고 있는 겁니다. 여러분이 교회라는 공동체에 잘 흡수되고 잘 어울리고 잘 호흡이 되어야 합니다. ‘예원교회 나왔더니 강서수준이랑 안맞고 나는 따로 놀꺼야.’ 라고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쓰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이곳에 보낸 이유, 계획, 목적, 방향 잡으시기 바랍니다. 이때 최고의 응답과 축복이 일어납니다. 예수님도 12제자와 함께 3년동안 동거동락했습니다. 공동체 훈련은 우리에게 영적인 성숙을 이루는 훈련의 장입니다. 그래서 평소 때 교회에서는 잘 모릅니다. 그러나 일주일동안 어디 여행한번 가보세요. 함께 먹고자고 해보세요. 성격들이 다 나옵니다. 모든 것이 드러납니다. 인정 못받았던 사람이 아주 인정받게 되기도 하고, 아주 인정받던 사람이 큰 실망을 주기도 하고 다 들켜 버립니다. 여러분들이 공동체가 얼마나 큰 치유의 현장인지 모릅니다. 유년부, 중고등부, 대학부, 청년부, 재직회, 전도회, 교구 모든 모임을 가질 때 공동체로 하나되는데 서로 위로하고 치유함으로 인해서 점점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해 갑니다. 맞습니까? 독단적으로 따로 노는 것은 아주 모나고 외로운 인생입니다. 치유받아야 합니다. 절대로 사역자가 될 수 없습니다. 공동체 훈련 매우 중요합니다. 여러분 율법적 체질, 종교화된 습성들이 공동체를 통해 치유되고 갱신되어야 해요. 그래서 모든 전도회 각종 기관 모임에 여러분들이 참여하는 것이 성숙한 신앙입니다. 예원교회 모든 성도들은 이런 축복을 받아누리시기 바랍니다.
[결론]
중국에서 말을 아주 잘 그리는 화가가 있었는데 문화혁명이 일어나니 말을 못 그렸습니다. 그러나 워낙 말을 좋아하다 보니 사람들이 말을 가꾸는 곳으로 보냈습니다. 처음에는 지저분하고 그랬는데 자꾸 말과 함께 살고 씻어주고 키우다 보니 정이 갔습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고 문화혁명이 끝나고 다시 말을 그릴 수 있는 기회가 왔습니다. 몇 년동안 붓을 안잡았는데 말을 다시 그리는데 전에 그렸던 그림하고 차원이 달랐습니다. 말과 함께 살다보니 말의 체질과 습성과 특성을 다 알아서 그림을 그리는데 말이 마치 살아움직이는 것 같았습니다. 생명력 있는 말로 그림을 그려낸 것입니다. 그 동안 말과 함께 살면서 말의 생리와 성격과 습관을 다 알게 된 것입니다. 이론적으로만 말에 대해서 알고 그렸을 때와 말에 대해서 사실적으로 알고 그림을 그렸을 때 그림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환경들은 조금도 불평할 것이 아닙니다. 그 환경을 주장하는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많은 고난을 현장에서 당하고 나면 이제 여러분이 사역현장에 왔을 때 그 고난이 엄청난 사실적인 사역이 됩니다. 영적인 시련을 많이 당한 사람은 영적인 문제 있는 사람을 딱 보면 금방 답을 줍니다. 무속생활하면서 고생 무지 많이 하다가 예수만나서 구원받은 사람은 무속인 딱 보면 다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이 계속 사역으로 이어지고 사실적으로 쓰임받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구원받은 성도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히려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당하는 이것은 영적성숙의 시간표구나’ 라고 깨닫고 참된 소망의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욥이 이유없는 고난을 당하고 난 후에 최후에 그는 무엇이라고 고백합니까?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오직 예수그리스도를 여러분이 바라보시고 어떤 어려움과 고난 속에서도 참된 믿음과 영적 성숙으로 다윗처럼 세계복음화의 쓰임 받는 현장전도제자의 과정인줄 알고 잘 참고 견디며 말씀으로 응답받는 그래서 이 시대 최고의 축복된 제자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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