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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의 고향 갈대아 우르[종합]

영국신사77 2008. 4. 3. 20:22

                                     

                     아브라함의 고향 갈대아 우르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로부터 남쪽으로 400㎞ 지점, 유프라테스 강변에 높이가 20m 정도로 야트막하게 땅이 솟아오른 지역이 있다. 바둑판처럼 평평한 평야가 끝없이 펼쳐진 메소포타미아 남부지역에서 그 둔덕은 사람들의 눈에 쉽게 띄었다.

 

                          영국인 테일러

  그러나 1855년 영국인 테일러가 이라크 지역의 영사로 부임하기까지 그곳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테일러는 그곳에 흥미를 갖게 되었고, 사람들을 시켜 그곳의 한 모퉁이를 발굴하게 했다.

 

  땅을 파들어가자 놀랍게도 고대문자인 쐐기 문자로 기록된 토판 문서들이 출토되기 시작했다. 흥분한 테일러는 그것들을 고대언어 전문가에게 보냈다. 토판문서의 내용이 판독되었을 때, 사람들은 놀랄 수 밖에 없었다. 그곳이 바로 아브라함의 고향 우르 였던 것이다.

 

  메스포타미아 지역은 유프라테스 강이 흐르고, 티그리스 강이 그 위로 흐르고 있는 그 사이에 비옥한 땅이 주욱 유지되어, 지중해 까지 연결이 된다. 강이 겹치는 그곳에 비옥한 초생달 같은 모양이 땅이 유지가 된다. 메소포타미아는 '강 사이의 땅'이라는 뜻으로 시날 평지가 있다. 그리고 시날평지 그곳의 끝 부분이 수메르 문명의 중심지 우르지역이다.

 

  이 유적지를 발굴중 놀라운 사실들이 발견되었는데, 아주 정밀한 수로를 만들어서 그 지역의 농사를 위해 물관리를 철저히 한 것이 발견되었다. 또한 많은 점토판에 완벽한 지도들이 기록되어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주전 2000년께 수메르 문명은 전성기를 이루었고 그 중심은 ‘우르’였다. 당시 우르의 왕 ‘우르남무’는 상당히 방대한 분량의 법률 조항을 제정했다. ‘우르남무 법전’으로 불리는 이것은 지금까지 알려진 인류 최고의 법전이다. 도량형 문제, 고아와 과부를 돌보는 문제, 그리고 가난한 자들을 억압하는 문제 등을 다루었으며, ‘함무라비 법전’보다도 적어도 200년 이상 앞선다.

 

 

  우르의 역사에서 최전성기는 서기전 21세기 우르 남무(Ur-Nammu)왕 때였다. 우르남무 왕의 업적으로 지금까지 우르에 남아 있는 유적은 그가 세운 거대한 계단식 탑이다. 달의 신(月神)에게 바쳐진 이 거대한 탑은 현재 21m 높이 부분까지 남아 있어, 오늘날 이곳을 찾는 사람들을 압도하고 있다.

 

  진흙 벽돌로 정교하게 쌓았고, 벽돌 사이에 사용한 역청은 400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그대로 남아 있어 바벨탑의 모습을 추정케 하고 있다.

 

  고대 수메르 문명의 중심도시 ‘우르’에 살고 있던 아브라함 가족이 그곳을 떠나 문화적으로 낙후되고 지형적으로 척박한 땅 가나안으로 이주하는 것으로 이스라엘 역사는 막이 오른다.

 

  인간적인 측면에서 보면 메마른 가나안 땅에서 비옥한 문명도시 ‘우르’로 이주하는 것이 오히려 합당하게 생각된다. 그러나 성경의 역사는 정반대이다. 인간의 타산적 계산을 초월하는 방법으로 아브라함을 통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는 시작된 것이다.

 

  "우르의 발굴, 새로운 아브라함의 발견"이라는 제목에서 보듯이 아브라함은 우리가 알고있는 가나안땅을 떠돌던 유목민이 아닌, 당대 최고도로 발달한 도시문명의 법과 도덕, 천지창조와 홍수에 관한 전승을 지니고 가나안 땅에 들어와 후손인 이스라엘 민족에게 전해줬다는 것이다.

 

                                        고고학자 울리

  이러한 엄청난 발견의 당사자인 울리(L.Woolley)는 1880년 런던에서 태어나 옥스퍼드 대학에서 신학을 전공한 후, 고고학으로 진로를 바꿔 대학 박물관에서 연구를 시작했다. 대영박물관과 펜실베이니아 대학의 후원으로 1922년부터 12년동안 아브라함의 고향으로 알려진 우르를 발굴하면서 세계적인 고고학자로 명성을 날렸다.울리의 우르 발굴은 성서고고학사에서 획을 긋는 중대한 사건이었다

 

  고고학자 울리는 우르의 지하묘지에서 무려 1850기나 되는 무덤을 발굴했다.대부분 부장품이 빈약한 평민들의 유골이지만, 이 중에서 16기는 ‘왕들의 무덤’으로 불렸다.왜냐하면 황금과 각종 보석으로 만들어진 부장품이 너무나 고급스럽고 화려했기 때문이다.

 

  대부분 서기전 2600년부터 100년에 걸쳐 통치한 왕들이나 귀족들의 것으로 추정된 이 무덤으로부터 상상을 초월하는 어마어마한 부장품이 무더기로 쏟아졌다.특히 한 무덤에서 수십구의 유골이 발견됐기 때문에, 울리는 왕이 죽었을 때 신하들을 산 채로 매장하는 순장의 풍습이 있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함께 출토된 도장을 통해서 왕비로 추정되는 푸아비(Pu-abi)의 무덤에서는 라피스 라줄리와 카넬리안 같은 보석으로 장식된 황금으로 된 머리 장식이 발견됐다.소나 양이 머리모양 황금으로 치장된 여러 개의 하프는 역사상 최초의 악기로 밝혀지기도 했다. 

 

  울리는 단순히 화려한 무덤의 부장품에만 만족하지 않고 대홍수의 흔적을 찾고자 했다.지하 무덤 발굴을 끝낸 1929년 그는 사방 20m 크기의 네모난 구덩이를 파내려가기 시작했다.12m쯤 내려갔을 때 더 이상 유물들이 나오지 않는 바닥을 발견했다.대부분의 고고학자들은 이런 바닥이 나오면 주거지의 기초로 여기며 발굴을 중단했지만, 울리는 진흙으로 이루어진 바닥을 더 파내려갔고 3.5m 아래에서 또 다시 일상적인 유물들을 발견했다.

 

  울리는 이 진흙층의 연대를 서기전 3500년경으로 추정했고 수메르 신화와 창세기에 언급된 대홍수의 증거로 규정했다. 진흙층 아래에서 발견된 1m 깊이의 주거지가 대홍수로 파괴됐다는 것이다.

 

  갈대아 우르의 발견자라는 공로로 울리는 1935년 영국의 조지 왕으로부터 작위까지 받았지만,그의 해석은 아브라함의 고향에 관한 논쟁에 다시금 불을 붙였다.

                                                                               출처:hongju1897 blog

 

                                                              

 
 
 
                                       우르/아브라함의 고향

                                 

 

 

                         아브라함의 고향 갈데아 우르 [이라크]

 


 

 

                                                         출처 국민일보 이원희 목사

 

 

 

 

 

 

 

                                      우르파 아브라함사원, 아브라함 동굴 

                                                                                                             
                                                                                                           
 
 

                        

                                                                                    아브라함 기념사원

 

                        

                                                                                 아브라함 기념사원

 

                               

                                                                              아브라함 기념사원

 

                       

                                                                                        사원 연못

 

                        

                                                                                 아브라함 기념사원

 

                      

                                                                            아브라함 기념사원 내부

 

                        

                                                 아브라함이 태어난 동굴        (출처- http://blog.daum.net/wonsunbe)

 

                       

                                                                              아브라함이 태어난 동굴

 

                        

                                                                                아브라함이 태어난 곳 

 

                       

                                                                         아브라함이 7살까지 살던 곳

 

 

                                                   아브라함 사원


  아브라함 연못은 거대한 유프라테스강을 막아 만든 인공호수인 아타튀르크 호수에서 남쪽으로 75㎞정도 내려가는 곳에 위치하는 산리우르파라는 도시에 있다.

 

  아브라함 연못은 한 전설을 가지고 있다.  그 전설은 유대교의 아버지 아브라함이 지금은 팔레스타인 땅인 가나안으로 들어가기 전, 이곳에서 태어났다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때어날 때 당시의 왕은 Nemrud왕이었다. 그가 어느 날 밤을 꾸었는데, 그의 왕좌와 통치를 멸절시킬 어린아이가 태어난다는 꿈이었다. Nemrud는 신관에게 물어 그 아이가 태어나리라는 해에 출생한 아이들을 모두 죽이도록 했다. 왕의 딸로 아브라함의 모친이었던 젤리하는 아무도 모르는 동굴에서 아브라함이 일곱살이 될 때까지 몰래 길렀으며, 일곱 살이 되자 아버지 데라가 우르에 가서 살게 된다.

 

  아브라함은 천체의 상징물로 사람이 손으로 만든 조각상들이 영원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경배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고,  영원히 존재하는 진짜 하나님을 경배하자고 사람들에 알리며 그 조각상을 훼파하였다. Nemrud왕은 사람들을 선동한 죄목으로 그를 잡아다 화형에 처하라고 명을 내렸다. 그 화형의 장소가 오늘날 산리우르파의 아브라함 연못이다. 이때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 아브라함을 화형에서 구원 해주셨는데, 화형의 집행 장소는 연못으로 변하였고, 화형에 사용된 장작들은 물고기로 변해 그 호수 속에서 지금까지 신성시 여겨지며 살고 있다는 전설이다.

 

  이러한 전설로 아브라함 연못을 중심으로, 북편에는 비잔틴 시대에는  성Thomas 기념교회가 세워졌다고 기술된 터에, 1716년  Rizvan Ahmet 장군(파샤)에 의해 Rizvaniye 모스크가 고풍스럽게 건축되었다. 그리고 남서쪽에는 비잔틴 시대 중 504년 성모마리아 교회가 세워진 터에, 1211년  Ayyubis에 의해 Halil -ür Rahman의 모스크가 건축되었다.

 

  오늘날 아브라함 연못은 성서에서 아브라함의 고향으로 기술 된 갈대아 우르를, 이라크 지역인 우르가 아닌 산리우르파로 주장하는 성서고고학자들의 논증이 되는 지역이다. 즉 우르라는 표음이 유사하는 것과, 아브라함 연못을 중심으로 아브라함의 탄생과 성장이, 설화가 아닌 전설로 그 장소가 신성시되어 사원으로 보존되어 있다는 것이, 이렇게 주장하는 학자들에게 매력적인 논증이 된 것이다.

 

  아브라함시대의 장작더미로 호수를 가득 채우고 있는 아브라함 연못은 아픔과 환희가 교차된 화형장소인 만큼, 관광객과 각각의 종교 순례객들의 지친 다리와 그리고 내국인의 지친 삶을 쉬어가는 공원으로 맞이하고 있다

 

 

 

                                                                                                             출처 성화사랑 | 성화사랑
                                                                                                             원문 http://blog.naver.com/bss2079/60026166599

 

                                                                                                                                        출처- http://holyland.maru.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