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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보존학회 보고서

영국신사77 2008. 2. 3. 21:02
 
말씀보존학회 보고서
                                                1. 들어가는 말
  이송오 목사가 "한글킹제임스성경"만이 가장 잘 번역되었고, 나머지 모든 성경들은 잘못 번역되었다고 하여, 전자만이 우리에게 구원을 제공하고, 후자는 모두 사단의 책들이라 하여 물의를 빚고 있다.
 
  성경의 원본은 없어졌고, 결국 5,000개에 달하는 사본들 가운데 택함을 받은 사본들로부터 신약성경이 구성되었다. 그리고 이 헬라어 성경이 여러 나라의 말들로 번역되었다. 그런데 동일한 본문에 관하여도 사본들 자체에 있어서 차이가 있으니, 사본 자체에 있어서, 사본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그리고 번역과정에서 전혀 무오류할 수는 없다.
 
  따라서 이와 같은 과정에서 일점 일획이라도 오류가 발견될 경우, 그 성경은 이단적이다라고 판단하는 것은 옳지가 않다. 우리는 최소한도의 오류에도 불구하고, 예배하는 공동체의 연속성 속에서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선포를 중심한 예수님 자신의 말씀들과, 사도들의 "복음"(apostolic Kerygma)이 성령의 역사 가운데 이미 사본 이전 시기에 잘 전승되어졌다고 보아야 한다. 또한 경전화 과정에서 이와 같은 사도적 전승이 사본선택의 표준이 되었다고 판단된다.
 
  그리하여 우리는 우리에게 구원을 제공하는 이와 같은 사도적 전승과 이를 중심으로 하는 성경의 주제를 제시함으로써 성경의 문헌비평적 차원을 넘어서서 성경의 중심내용을 제시하고자 한다.
 

                                                         2. 본 론

  예수님에 의해서 설교되었고, 사도들에 의해서 설교되던 하나님 나라의 복음(롬 1 : 1-4; 고전 15 : 1-11; 막 1 : 1; 눅 1 : 1-4; 행 8 : 40;요 5 : 39; 요 20 : 31)이 전승의 과정을 거쳐 기록되었고, 이것이 397년 카르타고 공의회에서 정경화되었다. 이 종말론적 복음이 성경의 기원이요, 성경의 통일성이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과 성령강림 사건이 없었더라면, 성경의 경전화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이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교회에 의해서 받아들여진 경전인 신구약성경에서 발견된다. 이와 같은 통일성과 다양성을 지닌 성경은 성령에 의해서 영감되었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과 성경은 성서신학 및 나머지 모든 신학의 통일성과 다양성의 근거이다.

  이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성경적 거대담론(the biblical metanarrative : 창조, 타락, 이스라엘의 구속을 통한 인류구속의 약속, 예수 그리스도 사건(성육신, 십자가, 부활), 성령강림의 사건, 교회, 그리고 종말론적 완성)의 절정으로서, 성경전체를 통일시키는 구속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역사적 사건들과 사실들을 전제한다. 그리고 이 특수 구속의 드라마는 인류의 보편적 드라마를 끌어들인다.
 
  그리하여 창조, 타락, 구속, 이스라엘의 구속사,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 성령의 강림, 교회 그리고 종말론적 완성은 성경전체를 관통하는 이야기이다. 바로 이 창조와 구속과 종말의 드라마에 하나님의 인류와 우주만물을 향하신 목적이 계시되어 있다. 그리고 성경이 하나의 구속 이야기를 말하고 있다(성경의 통일성)고 하는 주장은 신약성경의 성경구절들은 물론, 사도신경과 교부들의 "신앙규범"(regula fidei) 및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에 의해서 지지를 받고 있다. 그리고 이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성령의 수직적인 역사에 의하여 기독교 공동체를 통해서 전수되고 있다.

  그리하여 성경을 해석하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믿어 구원(이신칭의)을 받고, 종말론적 소망 가운데 사랑과 정의로 행하는 사람으로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과 성경의 다양한 메시지들의 역동적인 관계를 의식하고, 나아가서 21세기의 상황을 분석하여 성경적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오늘의 상황에 걸맞게 선포하고 행함으로써, 기독교 신학의 생동성과 역동성(viability and dynamics)을 추구해야 할 것이다.
 
  사도들이 한결 같이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당시 교회들이 처한 상황에 대응하여 해석하고 선포하고 행하였다면(물론 공관복음서들도 일정한 상황들을 전제하고 있다), 우리 역시 단순히 사도적 복음을 단순히 반복할 뿐만 아니라 이 복음을 21세기 상황, 무엇보다도 한국적인 상황에 적중시켜야 할 것이다.

  성경 안에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a single metanarrative in the Bible)과, 다양한 메시지들과 다양한 명제적 진리들은 상호 의미 연관의 관계 속에 있다. 즉,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전승에 조명하여 나머지 성서적 메시지들과 진리들을 이해하고 해석해야 하고, 후자의 이해와 해석에서 출발할 경우에도 전자에 도달해야 한다. 예컨대,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비유들, 하나님에 대한 은유들(아버지, 주님, 목자 등), 기타 작은 이야기들과 비 담화적 내용들을 이 "하나님 나라의 복음 이야기"에 입각하여 이해하고 해석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 이야기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에 대한(그의 성육신, 삶, 교역활동, 십자가의 죽으심, 부활) 이야기로서 성경의 다른 이야기들(small stories) 및 다른 장르(시편, 지혜서, 문학, 예언서, 서한, 묵시서 등)로 표현된 글들의 의미와 가치와 진리성의 특수성을 억압하지 않고 살려내면서, 그것을 통전 시킨다. 따라서 이와 같은 성서적 거대담론은 결코 성서 내의 미시적인 목소리들을 결코 억압하거나 소외시키지 않는다. 그리고 이와 같은 이야기에서 중요한 것은 인물과 사건이 시간과 공간 속에서 시작되어 갈등상황을 거쳐서 대단원에 이른다고 하는 점이다.

  이상과 같은 해석학적 원리에 더하여, 성서 해석자는 "구약 안에 신약이 감추어져 있고, 신약 안에서 구약이 계시된다"고 하는 어거스틴의 주장을 따라서 신약을 바라보면서 구약을 해석해야 하고, 구약과의 연속성상에서 신약을 해석해야하며, 나아가서 신약만의 유일무이한 비전과 진리들을 밝혀내야 할 것이다. 성경이 성경 자체의 해석자라고 할 때에도, 우리는 성경구절들과 단락들 상호 간에 상호 조명하고 보충하는 측면을 생각하면서, 동시에 그것이 신약성경의 특수성과 특히 성경의 "단 하나의 거대담론"(a single metanarrative in the Bible)을 지향한다는 점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 거대담론은 결코 성서의 다양한 소리들을 억압하가나 소외시키거나 전체화하는 폭력 혹은 보편화하는 폭력을 휘두르지 않는다. 또한 신약의 해석자는 그리스도로서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설교를 핵심 메시지로 갖고 있는 공관 복음서들과 사도들의 하나님 나라 복음을 상호 보완적으로 해석해야 한다. 공관 복음서 역시 "하나님 나라의 복음"에 대한 이야기요 해석이지만 말이다.

  우리는 말씀설교, 성경공부, 세례와 성만찬, 기도, 성도의 교제, 카리스마타 등 은혜의 통로를 통해서 성령의 역사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믿어, 죄 사함 받고 구원 얻은 사람은 하나님, 인간 및 자연과 새로운 관계 속에 돌입하고, 하나님의 창조와 구속에 대해 감사하며, 거룩하시고 사랑 많으신 하나님의 위엄 앞에서 두려움과 외경을 느끼고, 하나님 존전에서의 자신의 용납을 기뻐하며, 나아가서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기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인간의 의는 설자리가 없고, 오직 하나님의 의만이 우리를 의롭다고 칭한다(justfication by faith). 구원은 개인의 구원이기 전에 이 하나님 나라라고 하는 공동체에 편입되는 것을 말한다.
 
  성령의 역사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믿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요, 성령의 전의 구성원이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다. 그리고 새로운 공동체에 편입된 구원받은 사람은 성령의 덕목들로 자신의 성격을 개조하고, 성령의 다양한 은사를 받아, 다양한 교역(ministries)을 교회 안과 밖에서 수행할 수 있게 된다. 우리는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교회 안과 밖에서 하나님 나라를 구현해야 할 것이다.
 
  이 성령은 모든 것을 완성하시사, 하나님을 모든 것의 모든 것이 되게 하실 영광나라의 하나님의 영이시다. 이처럼 우리의 구원은 성경의 명제적 진리들에 의해서 매개된 하나님 나라의 복음에 대한 믿음에서 생긴다는 말이다. 이 때 믿음은 성령의 역사요 성령의 주된 열매이다.

  "한글킹제임스성경"만이 구원을 제공하눈 유일한 말씀이고, NIV, NASB, RSV, NEB, GNB, JB, LB, NRSV 등을 한글개역성경과 더불어 구원을 제공할 수 없는 "사단이 변개한 것"이라고 주장한 "말씀 보존학회"의 주장은 전적으로 잘못되었다.
 
  KJV만을 정통으로 보고, 나머지 성경들을 이단으로 보는 그들의 가르침은 잘못된 가르침이다. 성서공회가 인정하는 대부분의 번역성경들은 사본비평 차원에서 약간씩 다를 수 있으나, 모두 한결 같이 위에서 제시한 하나님 나라의 복음과 "거대담론"을 성경의 통일성으로서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송오 목사가 번역한 "한글킹제임스성경"과 기타 대부분의 번역된 성경들이 사본과의 관계에서 차이가 있을 수 있고, 번역 상의 오류들이 발견될 수 있을지라도, 성경의 주제에 관한 한 무오류하다고 판단된다. 정경화 과정에 있어서 초기의 권위 있는 사본들이 사도성을 그 선택의 표준으로 선택되었으니, 이 사도성은 다름 아닌 지금까지 우리가 주장하는 성경의 사도적 신앙내용에 해당한다.

  그렇다고 성경이 잘못 번역되어도 좋다든가, 성경전체가 영감된 문서(딤후3:15, 16)가 아니라는 말은 결코 아니다. 신구성경의 말씀들은 영감된 문서로서 진주알들 같고, 이미 지적한 성경의 주제는 이 진주 알들의 모음 이상의 무엇이리라. 따라서 이단이 아닌 번역성경들을 이단이라고 하는 이송오 목사의 가르침은 "바른 가르침"(orthodox)이 결코 아니다. 물론 우리는 "구약으로 Biblia Hebraica Kittel과 Biblia Hebraica Stuttgartensia, 신약으로는 네슬레·알란트의 Novum Testamentum Graece와 세계성서공회연합회의 The Greek New Testament"를 사용하여 가장 정확한 번역을 시도해야 한다. 그리고 이송오 목사의 번역성경이나 기타 영문 번역성경들에서도 잘못 번역된 말씀들을 찾아내야 하고, 문헌비평을 통해서 최선의 본문을 재구성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어떤 번역성경에 잘못 번역된 부분들이 발견된다고 하더라도, 그 안에 위에서 지적한 성경의 주제가 명쾌하게 제시되어 있는 한, 우리는 그것을 "이단적인 성경"이라고 해서는 안 될 것이다. 


                                                    3. 연구 결론
  이송오씨의 킹 제임스 성경만이 가장 잘 번역된 바른 성경이며 여기에 구원이 있으며 다른 사본성경들은 모두 사탄의 책이며 이단이라는 주장은 편협한 근본주의자들의 그릇된 주장으로, 성서공회가 인정하는 번역성경을 믿고 고백하는 모든 교회를 이단으로 몰아가는 아주 잘못된 것이다.
이들의 주장은 나아가서 자기들이 인정하는 킹 제임스 성경을 사용하는 교회만이 구원이 있고, 다른 번역성경을 사용하는 교회는 구원이 없는 것으로 주장하는 것 등은 반 기독교적으로 대단히 잘못된 주장이다.
  그러므로 우리교단내 모든 교회는 이런 사실을 성도들에게 교육하고, 이들의 잘못된 주장에 동조하거나 미혹됨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출처 : 창골산 봉서방  |  글쓴이 : 우물가. 원글보기
 

 
말씀보존학회 왜 문제인가?
                                     1. 말씀보존학회 왜 문제인가?
 
  우리교단을 포함하여 한국의 건전한 개역주의와 복음주의적 교단들은 모두 성경을 하나님의 영감된 말씀으로 믿고(고후 3;16) 신앙의 기초로 삼고 있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을 훼손시키는 어떠한 시도도 단호히 배격하며, 성경을 불신시키려는 모든 책략도 거부한다. 그런 의미에서 성경은 한국교회 성도들의 신앙의 모태이며 보루이기도 하다.
 
  그러나 말씀본존학회라는 단체에서는 이제까지 성경을 대적했던 많은 이단 운동과는 방향과 질을 달리하며 한국교회를 당황시키기에 충분한 파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서, 알지 못하는 사이에 문제성을 가지고 교계전반에 확신되고 있다.
 
 
                               1) 논란을 일으키는 독특한 부분
 
(1) 단순한 성경의 해석 차원이 아니라 성경자체에 대한 이견, 즉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개역 성경은 사탄이 변개한 가짜 성경이라느니 한국교회는 성경을 가지고 있지 않다느니 하는 등등의 주장을 하는 점.
 
(2) 그동안 성도들이 의심의 여지 없이 믿고 따르던 성경을 불신하게 한다는 점.
 
(3) 그들의 주장이 사본학과 원문 비평에 익숙치 않은 사람들에게 접촉되어 터무니 없고 무지한 논리지만 대단히 학구적이고 합리적으로 들릴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우려성이 크고, 이에 따라 개역 성경을 사용하고 다른 번역본을 무시하지 않는 정상적인 성경관이 파괴되고 성도들이 혼란에 빠지게 된다는 점.
 
(4) 무엇보다 비 성경적인 성경관과 학문적 접근으로 흑백논리를 증폭시키고, 기존의 성경을 가지고 설교하는 사람들을 무지한 것으로 간주함으로써, 하나님의 몸된 교회를 파괴시킬 수 있다는 점.
 
  이러한 것이 말씀보존학회가 끼칠 수 있는 오류며, 성경적인 교회들이 우려하는 포괄적인 내용이다. 때문에 이 단체에 대해 신중하고 정확하게 분석하여 교단과 한국교회가 성경적이지 못한 사설에 미혹되지 않도록 대처해야 할 것이라는 점에서 분석의 중요성이 있다.

 

                                 2) 말씀보존학회의 주장
 
  이송오 목사가 담임하는 성경침례교회는 교단이 없는 독립교ㅇ회이다. 이송오 목사는 사상적으로는 미국 펜사콜라신학교의 피터 러크만의 영향을 그대로 받았고, 해석학적으로는 세대주의적 방법과 관점을 그대로 쓰고 있으며, 전천년설을 주장하면서 헬라어 사본 중의 하나인 TR만이 유일한 성경이고 또 그것을 번역한 KJV 또는 자신이 이것을 보고 13년간 번역했다는 한글 킹제임스 성경만을 인정하는 것으로 그의 주장을 요약할 수 있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개역성경이 마치 구원을 알려주지 못하는 사탄이 변개하여 품에 안겨준 성경이라 말하며, 숨겨져있는 섭리로 보존된 성경이 따로 있는듯 주장 할 때, 평신도들 뿐아니라 원문 비평학에 익숙치 않은 목회자들까지도 미혹될 수 있는 점이 대단히 위험하다. 특별히 비판의식이 높고 아직 성숙된 성경이해가 없는 청년층과 교회에 대한 반항감이 많은 사람들에게 이들의 가르침이 전해질 때 미혹되기 쉽다는 점에서 개신교회와 목회자들의 주의가 요구된다.
 
 
                먼저는 성경사본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목사들이 가져야 겠다.
 
  성경은 주님이 주신 원문으로부터 많은 양의 필사본으로 우리에게 전해졌다. 인쇄술이 없었던 시대에 한 복사본에서 또 다른 복사본으로 내려오는 동안, 그 텍스트에 여러가지 종류의 오류가 스며 들었다. 텍스트마다 조금씩 다른 것은 때로 신학적 중요성의 문제가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성경의 의미에 근본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대부분 복사상의 오류는 사소한 차이의 것이다. 띄어쓰기 오류, 오탈자, 필사자의 착오, 중간절 건너띔...
 
  결론적으로 우리는 과거 400년전의 사본과 번역보다 훨씬 좋고 믿을 만한 헬라어 사본과 번역을 가진것을 확신할 수 있다. 원문 비평학이 지금보다 발달되지 않았고 고고학적 연구가 미진하고 훨씬 이전의 사본이 발견되지 않았을 당시에 제작된 성경을 , 더욱 정확해진 우위에 놓는 것으로도 모자라 KJV 외의 성경들을 모두 사탄의 작품으로 매도하는 말씀보존학회의 주장과 가르침은 비성경적임을 확인한다.
 
  더우기 자격이 검증되지도 않은 한 개인이 개인 성향에 따라 여러번 역본을 짜맞추어 번역해 놓은 것을, 유일하게 섭리로 보존된 성경으로 주장하는 것은 또 다른 변개된 성경을 생산해 내는 것 외에는 아무 의미도 없는 행동이다.
 
 
                                                                          2000년 4월 22일 Christian today.
본문중에서 ...(더우기 자격이 검증되지도 않은 한 개인이 개인 성향에 따라 여러번 역본을 짜맞추어 번역해 놓은 것을, 유일하게 섭리로 보존된 성경으로 주장하는 것은 또 다른 변개된 성경을 생산해 내는 것 외에는 아무 의미도 없는 행동이다. ) 08.01.12 14:36
 
 
 
 
 
 
   킹제임스 성경만을 바른 성경이라고 고집하시고
      개역성경을 사단의 사주를 받아 기록한 성경이라 주장하시는 분들께....
 
                                                                                                                                      글쓴이: 하늘의 사람
 
 
 
                               [37호] 최종 권위 성경은 존재하는가?
 

오늘날 최종 권위 성경은 존재하는가? 어떤 이들은 바로 영어역 킹제임스성경(King James Version)이 최종 권위 성경이라고 주장한다. 그러기에 이들은 여타의 모든 성경들은 사단이 변개한 성경이라고 공격한다.

 

그러면 언뜻 듣기에도 이토록 황당한(?) 말을 하는 이들의 주장은 무엇인가? 신약성경의 원문은 사도 시대 이후 주로 소아시아의 지역 교회들과 성도들에게 산재되어 있었고, 이 사본들이 신실한 성도들의 손에 의해 믿는 사람들이 최초로 그리스도인이라 불렸던 안디옥에서 발칸 반도를 거쳐 알프스를 넘어 유럽으로 옮겨졌고, 독일에서 영국으로 들어갔다. 이 원문은 악한 세력들의 성경 변개와 박해 속에서도 한 번도 그 맥이 끊어지지 않아 전통원문(Traditional Text)이란 명칭이 붙게 되었다.

 

초대교회에서 사용된 이 성경은 주후 157년 북부 이태리 교회에서, 주후 177년에는 프랑스 골 교회에서, 주후 200년 경에는 시리아교회에서 사용되었고, 특히 주후 312-1453년까지 비잔틴 제국 기간 동안에 그리스 정교회에서 1천 년 이상 사용되었으며, 에라스무스(Erasmus, 1522), 콜리네우스(Colinaeus, 1534), 스테파누스(Stephanus, 1550), 베자(Beza, 1598), 엘지버(Elzevirs, 1633) 등을 통하여 표준원문(Textus Receptus)으로 편집되었다. 이 원문에서 최종적으로 영어역킹제임스성경이 1611년에 나왔다.

 

한 마디로 이들에게는 영어역 킹제임스성경이 최종 권위이다. 이들은 참성경의 역사는 원본시대와 역본시대로 구분할 수 있으며, 원본시대는 히브리인의 히브리어시대로 막을 내렸고, 역본시대는 그리스어 시대로부터 시작하여 라틴어시대를 거쳐 영어시대로 이어졌다고 본다. 다시 말해 원본시대에 원어성경의 권위를 인정하는 것은 이스라엘이었지만, 역본시대로 넘어와서는 그 자격이 교회에 부여되었다. 그리고 교회시대에 교회들로부터 영어킹제임스성경이 유일하게 권위역본 곧 최종 권위성경으로 인정을 받았다. 살아계신 한 분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단 하나의 살아 있는 세계공용어인 영어로 보존하셔서 인류에게 주신 것이 절대무오류한 영어킹제임스성경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억지로(?) 굳이 그렇게 믿겠다는 이들에게는 매우 타당하게 보일지라도 실상은 옳은 주장이 아니다. 우선 영어라는 언어가 이 세상에 나타난 것이 초대교회 이후 수백년 이후이고, 킹제임스성경이 발간된 것이 1611년인데, 그때까지는 참성경이 없다가 그때에야 참성경이 주어졌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그런데 자세히 이들의 주장을 들여다 보면 이들이 단순히 참성경이 무엇인지 알아서 잘 믿어보겠다는 마음을 갖고 있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들은 하나의 번역본일 따름인 영어킹제임스성경을 참성경이라고 주장하다 보니 히브리어 구약성경이나 그리스어 신약성경도 부인하게 되고, 영어킹제임스성경만으로 자신들의 교리를 만들어 남들을 무차별 정죄한다. 그리고 참성경이 없는 교회는 결코 참교회일 수 없다는 것이다.

 

한국내에도 이러한 주장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개역>이나 다른 번역본들을 사단이 변개한 것이라 매도한다. 그런데 그들 중 어떤 이들은 영어역 킹제임스성경만이 최종권위라고 주장하는 정통주의자(?)가 있는가 하면, 자신이 번역한 한글 킹제임스성경이 최종 권위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또 어떤 이는 1611년판 킹제임스성경은 외경이 들어 있어서 참성경이 아니며, 1655년판 킹제임스성경이 진짜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오늘날 세계 각처의 성도들 손에 자기들 번역된 성경이 들리기까지 얼마나 많은 이들이 수고했는가? 그리고 하나님의 섭리는 얼마나 오묘한가? 그런데도 17세기에 번역된 하나의 번역성경을 최종 권위의 유일무이한 성경이라고 주장하며 자기들 성경 이외에는 참성경이 없고, 자기들 교회 외에는 참교회가 없다고 주장하는 이들을 우리는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