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神學 · 敎理· 교회사

*1. 하나님이 계신 증거들/성경적 조직신학 -제2부: 신론<김효석목사>

영국신사77 2007. 3. 31. 15:47

        제2부: 신론 

 

 

 

                                                                      출처 카페 >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 우.. / 사명
                                                                       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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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효석목사>

 

 

  신론(神論, Theology)은 하나님과 그의 사역들에 관해 논한다.

 

 

                                     신론의 주요 주제들

 

                                           1. 하나님이 계신 증거들

 

                                           2. 하나님의 속성들

 

                                           3. 삼위일체(三位一體)

 

                                           4. 하나님의 예정(豫定)

 

                                           5. 하나님의 창조 사역

 

                                           6. 하나님의 섭리하심

 

                                           7. 후대 기적의 문제

 

 

 

 

 

 

                1. 하나님이 계신 증거들

 

 

  하나님에 관한 진리들을 말할 때, 우리는 먼저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는 사실을 말해야 할 것이다. 만일 하나님이 존재하시지 않다면, 그에 대한 모든 논의는 무의미해질 것이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저자는 말하기를,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을 믿어야 할지니라"고 하였다(히 11:6).

                                  이성과 경험의 증거

  역사상, 하나님의 존재하심에 대한 여러 가지 합리적 논증들이 제시되어 왔다.

  첫째는 우주 혹은 자연만물 자체에 근거한 논증이다. 세상의 모든 사물은 어떤 원인의 결과이며, 어떤 결과가 존재하면 그 원인도 존재한다. 우주의 궁극적 원인 즉 제1 원인을 우리는 하나님이라고 부르는데, 우주가 존재하듯이 그 원인이 되는 하나님은 존재하신다.

 이것을 우주론적 논증(the cosmological argument)이라고 부른다(아리스토텔레스나 토마스 아퀴나스 등이 제시함).

  둘째는 우주 혹은 자연만물의 목적성에 근거한 논증이다. 집이나 시계 같은 모든 설계된 작품들은 그 설계자의 존재를 증거한다. 우주는 인간이 만든 그 어떠한 작품보다 더 탁월하고 놀라운 작품이며, 그 놀랍고 신비한 질서와 적응성, 예컨대 천체의 질서나 동식물과 사람의 구조 등은 그것을 만드신 지혜로우신 창조자이신 하나님의 존재를 증거한다.

  이것을 목적론적 논증(the teleological argument)이라고 부른다(소크라테스, 키케로, 필로 등이 제시함).

  셋째는 하나님의 개념에 근거한 논증이다. 사람이 가지고 있는 하나님 개념은 완전자라는 개념이다. 자연만물과 사람은 다 불완전하지만, 하나님은 완전하시다. '완전'이라는 개념 속에는 '존재한다'는 성질이 포함되며, 따라서 하나님은 존재하신다.

  이것을 본체론적 논증(the ontological argument)이라고 부른다(안셈이나 데카르트 등이 제시함).

  넷째는 사람의 양심 곧 도덕적 분별력에 근거한 논증이다. 사람 속에는 양심 곧 도덕적 분별력이 있는데, 그것은 그것을 주신 도덕적 하나님의 존재를 증거한다. 뿐만아니라, 인류가 역사 속에서 경험한 바대로, 선한 자는 잘되고 악한 자는 천벌을 받는다는 관념도, 도덕적 하나님의 존재를 증거한다.

  이것을 도덕적 논증(the moral argument)이라고 부른다(칸트 등이 제시함).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에 대한 이상 네 가지의 합리적 논증들은 사람들에게 유익하다. 촬스 핫지(Charles Hodge)는 "[그것들은] 소크라테스 때부터 현대까지 가장 지혜로운 자들에 의해 건전하고 결정적인 것으로 간주되어 왔다"고 말했고(Systematic Theology, I, p. 203), 로레인 뵈트너(Loraine Boettner)도 "우리는 하나님의 존재를 위한 우주론적, 목적론적, 본체론적, 도덕적 변론들은 개방되고 편견없는 마음을 가진 누구에게나 효과가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Studies in Theology, p. 82).

  박형룡 박사도 "유신논증들은 큰 가치를 가진 것이다. 성경과 기독교 경험에 의하면, 성령이 사람의 심령(心靈)에 확신(確信)과 회심(回心)을 산출하시는 과정에, 논증들을 사용하시기를 기뻐하신다. 이 논증들 자체들은 아무 사람도 중생시키지 못하나, 오히려 전도의 과정에 기구(器具)로 되어 왔다"고 말했다(교의신학: 제2권 신론, 32쪽).

                                        성경의 증거

  성경은 하나님의 존재하심을 증명하려 하지 않고, 그 사실을 전제하고 선포한다. 창세기 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그러나 이러한 전제와 선포는 하나님의 존재하심에 대한 강력한 증거이다. 하나님은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이이시다. 온 우주만물은 그로 말미암아 존재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사람이 하나님을 전제하지 않고서, 이 세상의 어느 것 하나를 바르게 알고 바르게 논할 수 있겠는가?

  창세기 1:1에 전제되고 선포된 하나님은 무엇에 의해 존재하게 되신 이가 아니고, 영원 전부터 스스로 계신 자, 즉 영원 자존자(永遠自存者)시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고 말씀하셨다(출 3:14).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라고 번역된 원어(에예 아쉐르 에예)는 직역하면 "나는 '나는 있다'이니라"이다. 헬라어 70인역은 "나는 있는 자니라"(에고 에이미 호 온)고 번역했고, 영어 성경은 히브리어를 그대로 직역했다('I am that I am'). 우리 말에 '여호와'로 번역된 하나님의 히브리어 명칭(예호와)은 '있다'라는 동사(하야의 고어 하와)에서 나온 말로서, '존재하시는 자'라는 뜻을 가진다.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스스로 존재하시는 분이시다.

  물론 성경은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합리적 논증들을 인정한다. 시편 19편의 저자는 고백하기를,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언어가 없고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그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 말씀이 세계 끝까지 이르도다"라고 했다(시 19:1-4). 시편 94편 저자는 "백성 중 우준한 자들아, 너희는 생각하라. 무지한 자들아 너희가 언제나 지혜로울꼬? 귀를 지으신 자가 듣지 아니하시랴? 눈을 만드신 자가 보지 아니하시랴?"라고 말했다(시 94:8, 9).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하나님이 지나간 세대에는 모든 족속으로 자기의 길들을 다니게 묵인하셨으나 그러나 자기를 증거하지 아니하신 것이 아니니 곧 너희에게 하늘로서 비를 내리시며 결실기를 주시는 선한 일을 하사 음식과 기쁨으로 너희 마음에 만족케 하셨느니라"고 했고(행 14:16, 17) 또 "그[하나님]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계시지 아니하도다.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느니라"고 했다(행 17:27~28). 또 그는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고 말했다(롬 1:19, 20). 히브리서 3:4은 말하기를, "집마다 지은 이가 있으니 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고 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존재하심에 대한 이런 합리적 논증보다도,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하나님의 특별계시들, 즉 하나님께서 직접 나타나시고 말씀하시고 기적을 행하신 일들은,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에 대한 더 확실한 증거들이 아닐 수 없다. 신명기 4:32~35에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다음과 같이 증거하였다: "네가 있기 전 하나님이 사람을 세상에 창조하신 날부터 지금까지 지나간 날을 상고하여 보라.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이런 큰 일이 있었느냐? 이런 일을 들은 적이 있었느냐? 어떤 국민이 불 가운데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너처럼 듣고 생존하였었느냐? 어떤 신(神)이 와서 시험과 이적과 기사와 전쟁과 강한 손과 편 팔과 크게 두려운 일로 한 민족을 다른 민족에게서 인도하여 낸 일이 있느냐? 이는 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목전에서 행하신 일이라. 이것을 네게 나타내심은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그 외에는 다른 신이 없음을 네게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러므로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은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은 어떻게 나타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사람 속의 본성의 빛 자체와 하나님의 행하신 일들은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명백히 선포하지만, 그의 말씀과 성령께서만 사람들에게 그들의 구원을 위해 그를 충분하게 또 효력있게 계시하신다"라고 대답했다(제2문답).

  비록 부수적으로이지만, 사람은 하나님의 손길을 체험하면서,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알기도 한다.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활동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생명은 하나님의 근본적 속성이다. 이 세상의 모든 생명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왔다. 그는 생명의 근원이 되신다.

  그러므로 성경은 하나님이 살아계시다고 증거한다.

  사무엘하 22:47, "여호와는 생존(生存)하시니."

  시편 36:9, "대저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예레미야 10:10, "오직 여호와는 참하나님이시요 사시는 하나님이시요."

  디모데전서 6:16,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살아계신 하나님은 택한 죄인들을 구원하시고, 그들을 지키시고, 인도하신다. 성도들은 이 땅 위에서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을 체험하며 산다. 특히 하나님은 성도의 기도를 응답하신다. 예레미야 29:12, 13,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그러므로 비록 부수적 증거이지만, 우리는 경험을 통해 하나님의 존재를 알 수 있다.

                                     무신론의 어리석음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는 무신론(無神論)은,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많은 증거들, 즉 합리적 논증들과 성경의 증거들과 경험의 증거들을 무시하는 어리석은 생각이다. 그래서 시편 14:1은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라고 말했다.

  무신론은 하나님이 없다는 주장에 대해 무슨 증거를 제시하는가? 무신론은 단지 어리석은 사상일 뿐만 아니라, 또한 하나님 앞에서 근본적인 죄악이다. 살아계신 창조주 하나님을 부정하는 것 자체가 큰 죄악이며, 또 그것은 인간의 윤리적 죄악들의 뿌리이다.

  그러므로 시편 14편은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는 자들은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다고 말했고(시 14:1), 잠언은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악에서 떠난다고 했다(잠 16:6).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부정하는 사람들을 죄악 가운데 내버려두셨다.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두셔서,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다(롬 1:28).

                            2. 하나님의 이름

  성경 속에 나타난 다양한 하나님의 이름들은 하나님의 인격과 성품을 나타내 주기 때문에, 그 이름을 공부하는 것은 우리의 신앙생활에 큰 유익을 가져다 줍니다.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이름은 크게 네 가지로 말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엘’이라는 이름입니다. 이 말은 ‘강한 능력을 가진 통치자’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데, 이는 하나님의 위엄과 권위를 나타내며 주로 복합어로 사용됩니다. 이 가운데에는 ‘엘로힘’(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 ‘엘엘리온’(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엘샤다이’(그 백성의 궁핍을 채워주시는 전능의 하나님), ‘엘올람’(영생하시는 하나님), ‘엘로아’(엘로힘의 단수형) 등이 있습니다.

  둘째로, ‘여호와’라는 이름입니다. 여호와는 ‘언약의 하나님’을 뜻합니다. 여호와께서는 당신이 약속한 언약을 반드시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여호와’와 관계되는 일곱 가지 명칭은 성도가 꼭 기억해야 할 이름입니다. 이 일곱 가지 이름은 ‘여호와 이레’(준비하시는 하나님), ‘여호와 라파’(병을 치료하시는 하나님), ‘여호와 닛시’(승리의 깃발되시는 하나님), ‘여호와 살롬’(평강의 하나님), ‘여호와 라하’(목자되시는 하나님), ‘여호와 찌드케누’(우리의 의되신 하나님), ‘여호와 삼마’(거기 계시는 하나님) 등입니다.

셋째로, ‘아도나이’라는 이름입니다. 이 말은 ‘나의 주’ 또는 ‘선생’을 의미하는데, 이는 종이 주인에게 또는 아내가 남편에게 하듯 우리가 하나님께 의지하고 순종해야 할 것을 뜻합니다. 또한 아도나이는 온 세상 만물에 대한 하나님의 통치권과 주권을 나타내 줍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아도나이 즉, ‘나의 주’라고 고백할 때 우리는 하나님께 헌신과 충성을 다하겠다는 맹세를 하는 셈입니다.

  넷째로, ‘아버지’라는 이름입니다. 이 이름은 구약과 신약에 모두 사용되었습니다. 이 이름은 만물을 지으시고 인간을 창조하신 창조주로서의 하나님을 의미합니다. 구약에서는 주로 하나님과 이스라엘과의 관계에서 이 이름이 사용되었고(출애굽기 4:22), 특별한 의미로는 메시아의 아버지로 사용되었습니다(시편 2:7). 반면 신약에서는 사랑이 많으신 만민의 아버지와(사도행전 17:28) 만물의 창조주를 나타내는 데 사용되었습니다(고린도전서 8:6). 그러나 이와 같은 일반적인 관계가 곧 구원을 보증해 주지는 않습니다. 오직 말씀과 성령으로 새롭게 거듭난 자만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아버지 하나님’이라는 명칭은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의 피값으로 죄사함을 얻음으로써 하나님과 관계를 맺은 영적 자녀들만이 비로소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요컨대,우리는 하나님께서 과거뿐만 아니라 오늘도 살아서 역사하시는 분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이름의 의미를 확실하게 깨달아, 그 이름을 높여 드리고 그 이름에 항상 감사하고 찬양하며, 그 이름을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땅 끝까지 전파되어야 하며, 영광과 찬양을 받으실 만하며 인생에게 견고한 망대가 되시기 때문입니다(시편 48:10∼14; 잠언 1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