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神學 · 敎理· 교회사

신학 [神學, theology] (2) <엠파스>

영국신사77 2007. 3. 27. 23:02
                           신학 [神學, theology]

 

 

    신(theos)에 관한 합리적 탐구(logos).

 

 

                                                 개요

 

  신이라는 낱말로 표현되는 '궁극적 실재'는 제1철학이나 존재론적 형이상학에서 연구되기도 한다. 각 종교마다 이에 해당되는 신학이 있지만, 학문체계에서 신학은 흔히 그리스도교 신학을 가리킨다. 그리스도교에서 신학은 그리스도교의 진리를 체계적으로 진술하고, 새로운 상황에서 그 진리를 거듭 재해석하는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노력이다.

 

  신학은 교회에 봉사하는 학문으로서, 성서와 교리의 인도를 받아 그리스도교의 진리를 인간상황에 선포하고 변증하는 기능을 담당한다.

 

  신학의 연구대상은 이성의 영역 안에서 온전히 해명될 수 없는 '궁극적이고 성스러운 실재'이지만, 그 탐구가 하나의 학문적 연구이기 때문에 신학은 인간의 시도이며, 시대상황과 역사성에 제약받는다. 따라서 학문 일반과 마찬가지로 진리를 탐구하는 순례자로서 신학이 있을 뿐이다.

 

 

                                       신학의 학문적 분과

 

  전통적으로 신학의 학문적 분과는 크게 3가지 영역으로 나누어지며, 각 분야는 다시 세분된다.

 

  신학의 세 영역은 성서신학 분야, 역사신학 및 이론신학 분야, 실천신학 분야이다.

 

  성서신학 분야는 성서의 직접 연구를 주목적으로 하며, 성서원전연구·주석학·신약학·구약학·성서언어·성서고고학 등이 이 분야에 속한다.

 

  역사신학 및 이론신학 분야에는 교회사, 교리사, 그리스도교 사상사, 조직신학, 문화신학, 종교신학, 그리스도교 윤리학 등이 속한다.

 

  실천신학 분야에는 설교학, 예배학, 목회상담학, 전례학, 선교학, 그리스도교 교육학 등이 속한다.

 

 

  이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성서신학 분야... 성서원전연구·주석학·신약학·구약학·성서언어·성서고고학 등

 

역사신학 및 이론신학 분야... 교회사, 교리사, 그리스도교 사상사,

                                  조직신학,  문화신학, 종교신학, 그리스도교 윤리학 등

 

실천신학 분야... 설교학, 예배학, 목회상담학, 전례학, 선교학, 

                      그리스도교 교육학 등

 

 

                                          성서 신학 분야

 

  현대 성서신학의 학문적 연구는 17세기 이후 계몽주의 정신에서 발달한 성서비평학으로부터 시작한다. 물론 교부들의 성서신학, 중세 스콜라 신학의 성서연구방법, 종교개혁자들의 성서연구 등은 그 나름대로 항구적 의미와 가치를 지닌다.

 

  17세기 이후 역사학과 문헌비평학이 발달함에 따라, 성서에 관한 과학적 연구방법이 본격적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본문 비평학과 역사 비평학을 통해 성서의 원문을 재구성하고자 했고, 저자와 수신자의 '삶의 자리'(Sitz im Leben)를 추적하게 되었다.

 

  연구방법은 더욱 분석적·과학적으로 진행되어, 성서의 문학적 양식을 연구하는 양식비평 연구방법, 편집과정과 성서의 전승과정을 연구하는 편집비평 연구방법과, 전승사 연구방법이 발달되었다.

 

  최근에는 인간의 삶의 기초를 이루는 사회 경제사적인 조명 없이 성서를 해석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깨닫고, 사회경제사적인 연구방법도 발달하게 되었다.

 

  모든 신학분야가 그러하지만, 특히 성서신학의 문제는 결국 해석학(hermeneutics)이라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성서신학은 성서가 전하려고 하는 참다운 메시지를 바르게 해석하고, 오늘의 삶에 적용하는 이해의 과제를 갖기 때문이다.

 

  17세기 이후에 발달한 성서비평학이 성서의 신적 권위와 계시의 진리성을 무너뜨린다고 판단하는 보수적 그리스도교 교파는, 학문적 성서비평학을 거절하고 '성서무오설'을 주장하기도 한다.

 

 

                                    역사신학 및 이론신학 분야

 

  신학은 그리스도교의 근본적 메시지를 인간상황 속에서 선포하고 변증하는 과제를 갖는다. 그러므로 신학은 성서가 증언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삶 속에 나타난 영원한 진리의 메시지와, 인간의 상황을 상관시킨다.

 

  인간의 삶의 상황은 일정한 역사적 시대에 이루어진, 인간의 자기이해의 총체이다. 신학은 복음의 자기정체성과 인간상황에 대한 연관성을, 동시에 지녀야 하므로 '자기정체성과 연관성의 딜레마'(Dilemma of Identity-Relevance)라는 좁은 길을 걸어가야 한다.

 

  상황을 무시하거나 초월하려는 신학은 굳어진 보수주의 신학이 되고, 그리스도교의 영원한 계시적 진리를 무시하는 자유주의 신학은 인본주의에 희생된다.

 

  교회사와 그리스도교 사상사는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변천하는 인간상황 속에서 복음에 응답하고 그리스도교 진리를 변증한 역사이다.

 

  그러므로 교회사와 그리스도교 사상사는 사회사·철학사·종교문화사의 밀접한 상호 조명관계에서 연구되어야 한다.

 

  이론 신학 분야는 교의학(dogmatics) 또는 조직신학의 형태로 전개되며, 계시론·신론·그리스도론·구원론·성령론·창조론·종말론 등을 체계적으로 다룬다.

 

 

                                              실천신학 분야

 

  신학의 궁극적 목적은, 교회의 선교 내용을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돕는 실천적 과제를 수행하는 데 있다.

 

  실천신학은 설교와 예배를 위한 전문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고 훈련할 뿐만 아니라, 무엇이 바른 설교이며 참다운 예배인가를 연구한다.

 

  상담학은 현대 심층 심리학과 상담 이론을 도구로, 인간의 영적·정신적 치유와 성장·성숙을 돕는다.

 

  그리스도교 윤리학은 개인윤리만이 아니라 사회윤리의 과제를 가지며, 사회구조의 창조적 변혁과 실천적 이론을 '하나님의 나라'의 빛 아래서 조명하고 훈련한다.

 

  선교학과 그리스도교 교육학은 '하느님의 선교론'(Missio Dei)에 근거해, 인간생활의 모든 영역을 복음의 능력으로 조명하고, 창조적 변혁을 통하여 사랑·정의·자유·평화 등이 구현되는 하나님의 나라 실현을 위해, 이론과 실천의 병행을 강조한다.

 

 

 

                                             현대신학의 동향

 

 

                                                           자유주의 신학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은 슐라이어마허와 신칸트 학파의 영향을 받은 리츨·헤르만 등을 중심으로 한 개신교 신학의 경향을 말한다. 현대 개신교 신학의 선구자는 슐라이어마허이며, 그의 신학사상은 1799년에 출간된 〈종교강연 Reden Über die Religion〉에 잘 나타나 있다. 〈종교강연〉은 종교를 경멸하거나, 종교를 형이상학이나 도덕으로 간주하는 합리주의적 지성인들과 계몽주의의 후예들에게 종교의 본질을 변증하려는 목적으로 씌어졌다. 슐라이어마허에 의하면, 종교는 유한자 속에서 무한자를 느끼는 우주의 직관적 감정이며, 무조건적인 절대의존의 감정이다. 종교는 형이상학이나 도덕이 아니며, 우주와 무한자에 대한 직관적 느낌이다. 그의 '체험과 직관의 신학' 속에는 낭만주의와 경건주의의 유산이 내포되어 있다. 또 '절대의존의 감정'은 경건의 본질적 직관이며, 절대의존을 느끼는 것과 자기자신이 하느님과 함께 하고 있음을 느끼는 것은 동일하다. '절대의존의 감정'은 인간의 자기의식의 최고 단계이며, 이 감정은 보편적인 삶의 요소, 곧 인간본성의 본질적인 요소를 이룬다. 슐라이어마허의 자유주의 신학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본성의 동일성 때문에 모든 인간과 동일하다. 그가 그리스도로서 모든 인간과 구별되는 것은 예수의 '하느님 의식'이 갖는 순수하고도 지속적인 힘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는 인간의 원형이다.

 

  리츨의 자유주의 신학은 신칸트 학파의 영향을 받아 그리스도교의 본질을 예수의 순수한 도덕의식에서 찾았다. 헤르만도 '예수의 내적 삶'이 인간에게 최고 선(善)인 하느님의 현실성을 자각하도록 했다고 본다. 그리스도교의 초자연주의적 계시신학은 자연주의적인 합리적 도덕종교로, 종말론적 미래지평은 현재적 도덕왕국으로, 하느님의 섭리와 역사경륜신앙은 역사의 내재적 목적으로 해석했다. 슐라이어마허의 감정의 신학, 리츨과 헤르만으로 대변되는 윤리신학을 자유주의 신학이라고 부르는 것은 신학적 인식의 출발점과 토대를 초월적 계시, 성경의 무오성, 정통 교의에 두지 않고 인간의 내면적 종교성·윤리성에 두기 때문이다.

 

 

                              역사주의적 종교사학

 

  슐라이어마허 이후 개신교 신학의 새로운 경향은 20세기초 에른스트 트뢸치의 '종교사학'에서 대표된다. 19세기 이래 역사주의 풍토 속에서 신학은 그리스도의 본질과 종교의 본질 이해를 더이상 인간의 내면적 종교감정이나 윤리성에서만 논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트뢸치는 그리스도교의 본질이 초역사적 진리인 교의에 기초한 교의학적 또는 심리학적 방법이 역사적 방법으로 해명되어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역사 개념은 신학의 중심범주가 되었다. 그러나 트뢸치는 그리스도교의 본질을 역사상대주의에 희생시키지는 않았다. 여기서 종교체험의 선험성과 종교의 표현, 자기전개의 역사성을 어떻게 통합하느냐가 문제로 등장한다. 역사의 관계된 모든 실제는 확고부동한 절대적 존재가 아니다. 따라서 역사과정과 인간의 역사와 관련된 역사적 그리스도교 역시 그 자체로서는 절대적 가치규범이 될 수 없다. 트뢸치는 그리스도교의 본질을 목적지향적이고 가치창조적인 윤리적 일원론으로 파악하고 있다. 하느님 자신은 역사적 창조과정과 구원사 과정에서 자기 목적을 지닌 존재이며, 전체성과 통일성을 지니며, 피조세계를 끝없는 문화통합과정으로 인도한다. 트뢸치는 성서의 종말론적 하느님의 나라를 역사 내의 문화통합과정으로서 파악하기 때문에, 그의 종교사 신학은 19, 20세기의 역사적 낙관주의와 역사발전론 위에 세워진 서구의 '문화적 그리스도교'의 특성을 나타내고 있다.

 

 

                                                     변증법적 신학

 

  또는 '하느님 말씀'의 신학 19~20세기의 역사주의와 심리주의에 희생된 그리스도교의 종말론적 특성과 계시의 초월성을 회복하려는 신학적 비판운동이 카를 바르트, 불트만, 틸리히, 니부어 형제 등을 중심으로 해서 20세기 변증법적 신학운동으로 나타났다. 카를 바르트는 〈로마서 강해 Der Römerbrief〉(1919)에서 자유주의 신학의 인간중심성과 역사주의에 기초를 둔 문화적·종교적 경향을 신랄하게 비판했고, 정통주의적 그리스도교 신앙으로 복귀하려 하여 그의 신학운동은 '신정통주의 신학' 또는 '위기신학'이라고 불린다. 그는 하느님의 초월성, 신과 인간의 질적인 차이, 하느님의 나라와 역사적 유토피아의 질적 차이를 강조했다. 하느님의 자기계시, 하느님의 나라는 모든 인간적·역사적인 자기성취적 도취를 심판하고 갱신한다. 바르트의 변증법적 신학은 종교개혁자들의 '오직 은총만', '오직 믿음만', '오직 성서만'이라는 신학원리를 다시 회복하려 했다. 신정통주의 신학을 '하느님 말씀의 신학'이라고 명명하는데 그것은 하느님 인식과 신앙의 가능성이 인간의 주체적 인식능력, 종교성, 윤리적 능력에 있지 않고, '하느님이 말씀하신다'는 근원적 계시 사건에 근거한다고 강조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바르트의 변증법적 신학은 철저하게 그리스도 중심적 신학이요, 삼위일체론적 구조의 신학이다. 복음주의적인 바르트의 신학은 20세기 최대의 기념비적 신학작품인 〈교회교의학 Kirchliche Dogmatik〉(13권, 1932)에 체계적으로 서술되었다. 불트만의 실존론적 신학은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의 인본주의적 경향과 신학적 객관주의를 극복하려는 점에서 바르트와 공동전선을 폈으나, 불트만은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의 창조적 유산을 더 많이 계승했다.

 

 

                                    문화·종교 신학

 

  20세기는 다원화된 사회이며, 지구촌의 실현과 함께 다문화·다종교의 사회현상이 인간 삶의 현실이 되었다. 문화신학자 P. 틸리히는 문화와 종교의 관계를 "종교는 문화의 실체이고, 문화는 종교의 형식이다"라고 규정했다. 종교는 인간의 정신적 삶과 활동의 특수한 한 기능이 아니고, 인간의 모든 정신적 삶의 '깊이의 차원'이라는 것이다. 리처드 니부어〈그리스도와 문화 Christ and Culture〉에서 복음과 문화의 관계유형을 '문화에 대립하는 그리스도', '문화 위에 있는 그리스도', '문화와 역설적 긴장관계의 그리스도', '문화의 그리스도', '문화를 변혁하는 그리스도' 등 5가지로 구분했다. 1960년대 이후 가톨릭의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65)와 개신교의 세계교회협의회는 세계 종교간의 대화와 만남의 문제를 논의했다. 종교간의 만남과 대화를 다루는 태도에는 배타주의적, 포용주의적 성취설, 다원주의적 입장들이 있다.

 

 

                                            정치신학

 

  20세기의 신학 경향 중에는 '하느님의 나라'가 지니는 자유·정의·평화가 구현된 '메시아적 공동체'의 실현을 지향하는 현실개혁적·실천적인 신학운동이 있다. 특히 유럽을 중심으로 한 정치신학, 남아메리카의 해방신학, 한국의 민중신학 등이 그 대표적 신학운동이다. 정치신학은 이론과 실천의 통합, 그리스도 제자직의 실천, 가난한 자와 연대성, 정의로움과 해방에 대한 요구, 하느님 나라의 현세적 실현을 강조한다. 인류문화의 가부장적 구조와 인식의 폐쇄성을 제거하고, 여성 해방과 함께 인간의 해방을 목표로 하는 여성신학운동도 정치신학의 기본원리, 특히 이론보다 실천을 위에 두는 점에서 일치한다. 정치신학은 사회적·정치적 구조와 그 역학관계를 깊이 고찰하지만 정치학이나 사회학은 아니다. 하느님의 나라와 그리스도의 메시아적 통치를 신학의 근본축으로 삼기 때문이다. 정치신학은 인간중심주의의 정치적·사회학적 윤리만이 아니라 자연환경 파괴의 현실에서 생태학적 윤리문제를 다루고, '자연의 신학'에 관심을 기울이며, 과정철학·과정신학 및 연대 속에서 지구 전체의 유기체적 생명연대와 윤리를 연구한다.

 

 

                                                                                                                    金敬宰 글

                                                                                                                    엠파스 백과사전

 

 

 

                                                    신학[개신교]

 

 

  16세기 종교개혁 이후의 비(非)로마카톨릭교회와 비동방정교회의 신학을 총괄하여 개신교 신학(프로테스탄트 신학)이라고 일컬음.

 

 

                                                 개 설〕

 

  로마 카톨릭의 신학이 실천적이며 성직자 중심의 성례전적 신학이고 동방 정교회의 신학이 사변적이며 신비적이라고 한다면, 개신교 신학은 말씀을 중심으로 한 십자가의 신학이라고 할 수 있다.

 

  개신교 신학은 루터파 신학과 칼뱅의 사상을 계승하는 개혁파 신학에서 발전해 온 것이다. 이 두 신학의 공통점은 ‘성서만’ ‘믿음만’ ‘은총만’을 강조하는 것이다. 여기에 근거하여 신학의 중심적 주제인 신과 인간과의 관계를 규명한다.

17∼18세기에 개신교 신학은 독일에서 경건주의운동, 영국에서 웨슬리운동, 미국에서의 대각성운동으로 나타난 복음주의 신학이 지배적이었다.

그리고 19세기에는 칸트의 비판철학, 합리주의 사고, 계몽주의, 낭만주의 등의 영향을 받아 슐라이어마허의 감정의 신학, 알브레흐트 리출의 도덕적 가치의 신학, 에른스트 트뢸치의 과학적 종교사의 신학 등으로 발전해 갔다.

19세기는 개신교 역사에서 양적으로 팽창한 선교의 세기였을 뿐 아니라 사상의 지적인 생기와 방향을 재정립하는 세기였다. 19세기를 대표하는 개신교 신학의 새로운 흐름은 넓은 의미에서 자유주의 신학이었다.

성서비판학이 발달한 것도 19세기였다. 그러나 20세기가 되면서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의 부정적인 요소가 신정통주의 신학에 의해서 극복이 된다. 그 중심 인물이 바르트와 브루너 등이다.

 

  신학은 교회를 봉사하는 학문이고 교회는 사회(세상)를 봉사하는 것이 그 사명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개신교 신학은, 특히 제2차세계대전 이후 시대의 흐름과 함께 남미에서는 해방신학, 아프리카에서는 흑인신학, 아시아에서는 물소신학 등 소위 제3세계의 신학이 창출되었다.

그리고 사변적이며 관념적인 신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신 죽음의 신학, 성숙한 시대에 복음의 세속적 해석을 주장한 세속화 신학, 각 민족 또는 지역의 토착문화에 의한 복음 해석과 선교를 위한 토착신학 등이 주장되었다.

 

 

                               〔한국의 신학사〕

 

  한국에서의 개신교 신학은 1885년 선교사의 입국 후 15년이 지난 1900년부터 시작되었으며, 성서신학과 조직신학의 문제가 일반적으로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었다.

잡지를 중심으로 한국 개신교 신학사를 시대구분 한다면, ① 한국 신학의 태동기(1900∼1915):≪신학월보 神學月報≫시대, ② 한국 신학의 발아기(1916∼1927):≪신생명 新生命≫시대, ③ 한국 신학의 정초기(1928∼1939):≪신학세계 神學世界≫·≪신학지남 神學指南≫시대, ④ 한국 신학의 혼란기(1940∼1956):≪십자군 十字軍≫시대, ⑤ 한국 신학의 개화기(1957∼1972):≪기독교사상 基督敎思想≫시대, ⑥ 한국 신학의 전개기(1973∼):≪신학사상 神學思想≫시대로 나눌 수 있다.

 

  또 다른 차원으로 구분한다면, ① 한국의 전통사상에서 기독교의 수용과 해석의 시기(1784∼1900), ② 선교사 신학에 의해 지배받던 한국 신학의 바빌론 포로기(1901∼1933), ③ 보수와 진보주의 신학의 갈등과 투쟁기(1934∼1959), ④ 한국 토양에서 주체적인 한국 신학을 형성하려는 해산의 고통기(1960∼1972), ⑤ 한국의 문화, 역사 현실에서 한국 신학의 전개기(1973∼)로 나눌 수 있다.

초기 한국 개신교 신학연구사에서 최병헌(崔炳憲)의 문화대화적 토착신학은 주목할 만하다. 그의 주된 학문적 관심은 기독교의 진리를 타종교와의 비교, 관계에서 규명하려는 데 있었다.

 

  1907년에 출판한 ≪셩산유람긔 聖山遊覽記≫(1912년에는 ‘聖山明鏡’으로 제목을 고쳤음)에서 유·불·선과 기독교와의 대화라는 형식으로 전통 종교와 기독교의 만남에 대한 문제를 해명하려 하였다.

그는 타종교에 대하여 배타적이고 독선적인 자세를 취하지 않고 대화를 통한 변증법적 긍정과 부정에 의한 창조적인 종교신학을 수립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한국에 온 대부분의 선교사들은 이른바 ‘청교도적 율법주의 신학’ 또는 교리의 문자적 해석을 강조하는 점에서 ‘교리문자주의 신학’의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은 성서의 고등비평적 연구를 반대하고 축자영감설에 근거한 성서 문자주의 신학을 주장하였다.

 

  이와 같은 신학적 입장을 미국의 근본주의 신학이라고 하는데, 이 입장의 한국인 대표자가 박형룡(朴亨龍)이다. 그는 ≪기독교근대신학난제선평 基督敎近代神學難題選評≫(1935)에서 모든 기독교 근대 신학사상을 근본주의 신학의 입장에서 부정적으로 비판하였다.

이러한 보수주의적 정통주의 신학에 대해서 비판적인 입장을 취한 신학이 김재준(金在俊)으로 대표되는 한국 진보주의 신학이다.

그는 1930년부터 구약의 예언자 연구를 통하여 역사의식의 중요성을 인식하였고(1937년에 ≪십자군≫ 발간), 1970년에는 ≪제3일≫을 통하여 한국 교회의 주체적 자의식을 강조하면서 죽음을 넘어 희망과 부활을 보는 역사 참여적 진보주의 신학을 형성하였다.

 

 

                                〔한국 신학의 특징〕

 

  한국 진보주의 신학 계열은 보수정통주의 신학 계열의 부정적 비판에도 불구하고 세계 신학의 흐름과 호흡을 같이하면서 1960년대에 문화대화적 토착신학을 재형성하였다.

 

  윤성범(尹聖範)의 〈환인·환웅·환검은 곧 하나님이다〉(≪思想界≫, 1963)라는 논문은 본격적인 신학논쟁을 일으켰으며, 유동식(柳東植)은 기독교와 샤머니즘과의 관계를, 변선환(邊鮮煥)은 기독교와 불교와의 관계를 다루면서 한국의 전통적인 문화적 맥락 속에서 기독교사상을 재해석하려고 하였다.

1960∼1970년대의 경제개발에 의한 도시화·산업화의 급격한 사회적 변화 속에서 신 죽음의 신학, 세속화 신학, 하나님의 신교신학 등을 수용 전개시켰다.

그래서 신은 ‘문제의 해결사’도 아니며, 인간의 필요에 응하는 ‘실용적 가설’도 아니고 ‘임기응변책’도 아니라는 신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하게 되었고, 성숙한 세대에서의 기독교의 비종교화를 주장하게 되었다.

 

  또한 교회(교파) 선교에 대한 반성으로 신이 주체가 되어 인간 삶의 전 영역에 그리스도가 증거되고 평화가 확립되는 선교신학이 강조되었다.

한국 진보주의 신학 계열에서 가장 한국적인 신학으로 창출된 신학이 1970년대 후반에 태동된 ‘민중신학’이다. 이 신학은 전세계적으로 한국 신학을 대표했다.

성서신학의 입장에서 김정준(金正俊안병무(安炳茂), 조직신학의 입장에서 서남동(徐南同)·서광선(徐洸善)·김용복(金容福), 교회사의 입장에서 주재용(朱在鏞), 윤리학의 입장에서 현영학(玄永學) 등에 의해 전개되었다. 이 신학은 제2세대의 젊은 신학자들에 의해 계승 발전되고 있다.

한국의 개신교 신학은 초월적 신 중심주의적이며 하향적 계시 중심적인 정통보수주의 신학 계열과 성육신한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역사 중심적인 진보주의 신학 계열, 그리고 오순절 성령의 역사를 강조하는 성령주의 신학 계열이 있다.

 

  그러나 한국 개신교 신학은 서구의 전통적 신학을 하나의 신학으로 참고하면서 우리의 정치·경제·사회 현실을 삶의 자리로 하여 과거 문화전통과의 만남에서 신학적 주제들을 재조명, 재해석하는 것을 앞으로의 과제로 삼고 있다.

 

 

≪참고문헌≫ 韓國的 神學(尹聖範, 宣明文化社, 1972)
≪참고문헌≫ 韓國神學의 鑛脈(柳東植, 展望社, 1982)
≪참고문헌≫ 民衆과 韓國神學(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신학연구위원회 편, 한국신학연구소, 1982)
≪참고문헌≫ 韓國宗敎와 韓國神學(유동식박사 고희기념 논문집, 한국신학연구소, 1993)
≪참고문헌≫ 한국그리스도교 신학사(朱在鏞, 한국기독교성서회, 1998)

 

 

 

 

                             신학[카톨릭]

 

 

  넓은 뜻에서는 각 종교의 신앙과 교리를 연구하는 학문을, 좁은 뜻에서는 기독교에서 하느님이 계시(啓示)한 진리를 신앙과 이성(理性)으로 파악하려는 학문적 노력을 말함.

 

 

                                      〔개 요〕

 

  기독교에서 신학을 가리키기 위해 채용한 ‘테올로기아(theologia)’라는 말은 원래 그리스어로 ‘신들에 대한 이야기’나 ‘철학적 형이상학적 원리로서의 신을 논하는 학문’이라는 뜻이었다. 그리스어를 사용하던 동방교회에서는 이미 2세기에 이 단어를 도입하였다. 그러나 라틴어를 사용하던 서방교회에서는 12세기에 가서야 뒤늦게 이 단어를 사용하기 시작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벌써 다음 세기에 보편화되었다.

동방교회에서 이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한 사람은 호교론자인 유스티노(Justinus)였다. 그는 기독교를 변증하기 위해 용어만이 아니고 그 사유 방법까지 도입하여 사용하였다. 그 후 오리게네스(Origenes)를 거쳐 4∼5세기에 대교부들의 시대를 맞으면서 동방교회의 신학은 곧 체계화되고 그 기초가 확립되었다. 한편 2세기 말 테르툴리아노(Tertullianus)에 의해 시작된 서방교회의 신학 역시 5세기 초 서방의 최대 교부인 아우구스티노(Augustinus)를 맞으면서 대성을 이루었다.

이 전통을 바탕으로 서방신학은 중세 때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의 출현으로 스콜라 신학이 확립되면서 카톨릭 교회의 신학으로서 그 기초와 전통이 확고해졌다.

신학은 하느님이 계시한 사실, 그리고 이 계시를 수용하는 신앙에서 출발한다. 말하자면 믿으면서도 행하는 신앙에 대한 학문적 탐구요 인식이다.

‘이해를 찾는 신앙(fides quaerens intellectum)’이라는 스콜라학적 정식(定式)이 그것을 잘 말해 준다. 신학의 주제는 물론 하느님이지만 그 계시가 신인(神人)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현실화되었기 때문에 핵심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이다.

신학은 계시 진리를 하느님의 말씀인 성서와 교회의 전승인 성전(聖傳)을 통해 증명하려 한다. 따라서 하느님의 계시에서 출발하여 현재에 이르기까지 교회 공동체의 신앙 고백과 신앙 생활의 역사를, 교회의 모든 문헌들을 통해 고찰하고 또한 시대와 장소와 문화적 상황에 따라 어떻게 표현되었는지를 연구하는 것이 신학의 중요 임무이다.

 

 

                                       〔구 분〕

 

  신학에는 분과가 많지만 크게는 세 부문 즉 이론적 부문, 역사적 부문, 실천적 부문으로 구별된다. 이론적 부문인 조직신학은 다시 교의신학과 윤리신학으로 구분된다. 역사적 부문인 역사신학은 다시 교회사학과 성서신학으로 구분되며 실천적 부문인 실천신학은 교회법, 사목신학, 선교학, 전례학 등으로 구분된다. 그리고 신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을 신학자라고 부르는데 신학의 연구는 일반적으로 대학의 신학부 또는 학부 규모의 연구기관에서 행해진다.

현대신학은 스콜라 신학의 신 중심적이고 지나치게 논리적이고 연역적인 신학 체계에서 인간 중심적이고 현실 참여적인 정치신학, 해방신학, 민중신학, 여성신학 등으로 전환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뿐만 아니라 금세기까지 유럽이 주도하던 신학이 제3세계 신학계에서 주체성을 찾아 독자적인 길을 모색하게 되면서 아시아신학, 한국신학 등이 운위되고 있다.

 

 

                             〔한국 카톨릭 신학〕

 

  신앙과 교리에 대한 연구라는 넓은 뜻에서의 한국 카톨릭 신학의 기원은 조선 후기 사회에 중국으로부터 한문 천주교 서적들이 전래되면서 조선의 지성인들이 이 서적들을 통해 천주교 교리와 신앙을 이해하려고 연구하기 시작한 데서 찾을 수 있다. 조선에 전래된 한역서학서(漢譯西學書)들은 많고 다양하였다. 특히 종교적으로 유학자들의 관심을 끈 것은 교리서인 ≪천주실의 天主實義≫와 윤리서인 ≪칠극 七克≫이었다.

≪천주실의≫는 지식인들을 상대로 신의 존재, 영혼의 불멸, 사후의 상선벌악(賞善罰惡) 등 천주교의 기본 교리를 철학적으로 논증하려는 호교서였으므로 유학자들의 연구와 논평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또한 그 취지가, 예컨대 상제(上帝)를 천주(天主)와 동일시하는 등 적응주의적 입장에서 유교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려는 보유론적(補儒論的)인 견지에서 저술된 것이었기 때문에 조선의 유학자들도 자연 배척과 수용이란 상반된 반응을 나타내게 되었다.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유학자들은 비록 소수이기는 하였으나 천주교 신앙의 수용 여부를 결정짓기 위해 강학(講學)을 개최하고 거기서 공동으로 유교와 천주교 서적들을 차례로 검토하고 연구하게 되었다. 그 결과 그들은 마침내 천주 신앙을 일으키고 그 신앙을 실천하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시작된 신앙운동은 마침내 한국 천주교회의 창설로 이어졌다.

교회가 창설된 후에도 한국 천주교를 지도하던 남인(南人) 유학자들은 기성 신자를 위한 기도서나 신심서 외에도 지성인들을 상대로 보유론(補儒論)의 입장에서 ≪주교요지≫ 같은 교리서를 펴냈다. 그런가 하면 〈상재상서 上宰相書〉 같은 호교서를 통해 천주교를 사교(邪敎)로 금지하는 것이 부당함을 변호함으로써 주로 상류층 인사들의 개종에 주력하였다.

이와 같이 교회 창설을 전후한 초기 카톨릭 신학은 신앙에 대한 학문적인 이해에서 시작하여, 그것을 보유론적으로 조선의 전통 유교와 문화 그리고 현실에 적응시키려 하였으며 또한 그들의 연구 결과를 민중의 글인 한글로 표현하여 대중화하려 하였다는 점에서 토착화를 시도한 신학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이러한 신학의 토착화 경향은 선교사의 입국과 서구 신학의 도입으로 점차 위축되어 갔다. 또한 교회의 중심 세력이 양반층으로부터 중인·평민 등 하층 신분으로 변모해 가면서 신학도 종래의 현실 위주에서 개인적인 신심과 내세적·종말론적 신앙에 보다 역점을 두면서 현실과는 거리가 있게 되었다.

개화기에 들어서면서 신학교의 설립으로 신학 교육이 전문적으로 실시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들 초창기 신학교에 설치된 신학 과목은, 당시의 교회가 한국의 역사와 현실에서 멀어져 있던 상황이었으므로 서구 신학의 비판적인 수용에 따른 내용은 되지 못하였다. 그 결과 당시의 서구 신학이 지니고 있던 주요 특징 중의 하나인 호교론이 선교사들에 의하여 교육되어 신학의 주체가 되었다.

6·25전쟁을 계기로 국내에서의 신학 교육이 어려움을 겪게 되자, 교회 당국에서는 해외 유학을 통하여 인재를 양성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이때의 유학생들 가운데는 신학을 전공하고 귀국하는 경우가 많았고, 이로써 한국 천주교의 신학 연구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하였다.

한편 1960년대 후반기부터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6)의 신학을 수용하기 시작하였다. 이 수용은 전례 운동과 천주교·개신교의 교회 일치 운동을 일으키면서 신학의 각 분야로 파급되어 갔다. 뿐만 아니라 신학의 토착화를 위한 노력이 공의회의 정신을 구현한다는 목적에서 이루어져 이 시기 신학의 주요한 특징이 되었다.

 

 

                     〔한국 카톨릭 신학의 현재와 미래〕

 

  현재 한국 신학은 아시아신학과 더불어 서구의 인간 중심적이고 현실 참여적인 현대신학의 사조, 특히 1960년대에 라틴 아메리카에서 발생한 해방신학의 영향으로, 1970년대 이래 현실 변혁적이고 민중신학적인 새로운 동향을 뚜렷이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성향은 해방신학과 맥을 같이하고 있어서 해방신학과 별로 다를 바가 없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뿐더러 해방신학과 민중신학도 이제 그 사명을 다한 것이 아닌가라는 전망에서, 또한 새로운 천년을 맞이하는 주요 시점이라는 점에서 새로운 신학이 나와야 한다는 주장이 신학계 일각에서 대두되고 있다. 새 신학의 출현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서구 신학에서 벗어나 신학의 주체성이 확립되어야 한다.

그래서 한국 카톨릭 신학계에서도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래, 특히 해방신학의 영향으로 토착화 신학, 국적 있는 신학, 한국적 신학을 많이 거론하면서 독자적인 길을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이렇다 할 성과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현재 한국 천주교의 신학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주요 단체들로는 한국그리스도사상연구소, 가톨릭대학 신학부 부설 교의신학연구소, 서강대학교 부설 신학연구소,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산하 한국사목연구소 등이 있으며 또한 가톨릭신앙생활연구소, 우리신학연구소 같은 평신도 신학 연구 단체도 있다.

 

 

 

≪참고 문헌≫ 신학(鄭夏權, 한국가톨릭대사전, 한국교회사연구소, 1985), 현대 신학의 동향(심상태, 사목 194·195호, 1995), 한겨레 神學을 위한 提言(鄭良謨, 神學展望 108호, 1995년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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