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conomic經濟 · 미래 · 사람들/경영Ceo리더십,성공企業

웅진그룹 윤석금 회장의 신년 희망 메시지

영국신사77 2007. 1. 15. 23:31

“난 긍정을 파는 세일즈맨… 올해부턴 행복을 팔겠다”

웅진그룹 윤석금 회장의 신년 희망 메시지
무일푼으로 시작 2조5000억 매출 한국인의 ‘神氣와 魂’이 웅진 만들어 가장 어려웠던 IMF가 블루오션 창출 풀 죽은 직원 함께 목욕 氣 되살려

 

독점인터뷰=이한우 경영기획실 기자 hwlee@chosun.com
입력 : 2007.01.13

  • “현재의 나를 만든 것은 한국인의 기(氣)와 혼(魂)이다.”

    정해(丁亥)년을 맞아 웅진그룹 윤석금(尹錫金·62) 회장은 더 바빠졌다. ‘한국인의 신기(神氣)’, ‘긍정의 힘’을 기르는 노하우를 듣고 싶어하는 외부 강연요청이 쇄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 전반에 ‘창조경영’, ‘섬김의 리더십’이 화두로 떠오른 것과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연말에는 삼성경제연구소가 그를 불러 윤석금 스타일의 ‘창조경영’ 강연을 듣는가 하면 한국능률협회는 윤 회장을 고정강사로 모신다. 각종 경영관련 대학원이나 CEO모임들에서도 그의 ‘힘을 주는 목소리’를 들으려는 초청장이 비서실에 쌓이고 있다. ‘긍정의 힘’을 설파하는 전도사. 풀 죽은 세상에 구세주랄까?

    기(氣). 정말 그렇다. 1980년 무일푼에서 시작해 26년 만에 2조5000억원의 매출을 기록한 그의 성공신화에 매료된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윤 회장을 직접 만나고 나면 기를 받는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부터 그를 모시려는 각계의 움직임에 불이 붙었다.

    그의 기(氣)가 기업실적에 고스란히 반영됐음은 물론이다. 조선일보 조사에 따르면 2002년 말 종업원 1000명 미만이던 1191개 상장기업 중 2006년 말 현재 1000명 이상으로 성장한 곳은 웅진코웨이를 비롯한 14개였고 매출액 3000억원을 넘긴 곳은 5곳, 매출 1조원을 돌파한 곳은 웅진코웨이 단 1곳뿐이었다. 인터뷰는 종로4가 웅진그룹 본사 회장실에서 3시간 동안 진행됐다.

    ■“꿈이 없는 사람은 죽은 사람”

    ―이런 결과(훌륭한 기업실적)를 알고 있었습니까?

    “난 그런 사실은 몰랐는데…. 다만 2, 3세가 아니라 창업자가 경영하고 있는 회사 중에는 아마 세 손가락 안에는 들지 않겠나 정도 생각했지요. 팬택이 어려움에 봉착했는데 참으로 착잡하게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 경제환경에서는 중견기업이 대기업으로 발돋움한다는 게 거의 불가능해졌잖아요. 마음 속으로 격려를 많이 했었는데….”

    ―웅진그룹의 작년 매출은 2조5000억원이라더군요. 1980년 창업 이후 계속 성장해왔다고 하더라도 믿기 어려운 성과입니다.

    “IMF 직후 잠시 정체된 것을 빼면 성장만 해왔지요. 작년에도 골프장만 빼면 전 기업이 흑자입니다. 골프장도 새로 건설하는 바람에 그랬던 것인데 내년이면 흑자로 돌아설 것입니다. 올 매출은 3조원 정도로 잡고 있습니다.”

    ―30대 중반에 맨손으로 창업해서 환갑 때 3조원이라…. 꿈같은 이야기입니다.

    “꿈도 진화합니다. 저는 중학교 2학년 때 처음 치약으로 이를 닦았습니다. 그 시절 우리 집은 너무 가난해 세 끼 쌀밥 먹어 보는 게 간절한 꿈이었지요. 그게 저의 첫 번째 꿈이에요. 1970년대 초 대학 졸업하고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파는 세일즈맨으로 취직하면서 일단 그 꿈은 실현되었습니다. 그 이후 내가 꿈을 가졌던 것은 1980년대 초 웅진출판 창업 때였습니다. 손에 쥔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당시 가장 큰 동아출판사처럼 큰 출판사로 키워야겠다는 게 그때 꿈이었습니다. 10년쯤 지났을 때 매출액에서는 동아출판사를 따라잡았어요.”

    ―꿈을 크게 가져야 한다…. 너무 평범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사람은 ‘산 사람’ ‘죽은 사람’으로 나눌 수 있어요. 꿈 없는 사람은 살아있어도 실은 죽은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열정이 없고 매사에 부정적이며 함께 일을 할 수가 없는 사람입니다.”

    ―지금은 어떤 꿈을 갖고 계십니까?

    “한국 최고의 기업!”

    ■“자기를 긍정해야 자기개조가 가능”

    ―그런 긍정적 태도는 세일즈맨 경험에서 나온 것입니까?

    “27살 때 학교 마치고 세일즈에 뛰어들었어요. 솔직히 처음부터 잘될 리 있었겠습니까? 모든 게 어색하고 쭈뼛쭈뼛…. 안 되겠다 싶어 먼저 설명을 요령 있게 할 수 있는 일종의 매뉴얼을 만든 다음 반복 숙달했어요. 동시에 매일 30분씩 거울 앞에 서서 신뢰감을 줄 수 있는 얼굴을 만들기 위해 수도 없이 표정 짓기를 연습했지요. 몇 달 하고 나니 자연스럽게 내 얼굴에 밝은 인상이 생겨났어요. 신기하게도 그때부터 물건도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습니다. 브리태니커 세일즈에 뛰어든 첫해에 한국 1등도 아닌 세계 1등을 했으니까요. 그래서 윌리엄 벤튼상도 받았습니다.”

    ―창업 계기는?

    “첫해에 벤튼상을 받는 바람에 다음해에 곧바로 지부장을 맡았어요. 즉 나의 현장세일즈 경험은 딱 1년뿐입니다. 그러나 그때 나는 ‘뭐든지 남과 다르게 하자’라는 철학을 갖게 됐어요. 그래서 1979년 출판사업을 해보기로 하고 사업계획서를 만들어 미국에 갔습니다. 외자를 끌어들여 사업을 해보려 했던 것이지요. 그런데 단 한 명의 미국 CEO도 만나지 못하고 낙담해 귀국길에 일본에 들렀어요. 그때 일본회사 ‘헤임’에서 한국 내 판매회사를 맡아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일종의 학습용 카세트 테이프를 파는 회사였지요.”

    ―여기서 회장님의 유명한 ‘택시 속 아이디어’ 사건을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 그게 1980년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서 과외(課外)금지조치를 내렸잖아요. 그때 나는 서울역 앞 사무실에서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가고 있던 중에 라디오로 그 소식을 들었어요. 즉각 ‘유명한 강남 과외선생들 강의를 카세트에 담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어 곧바로 당시 문교부로 달려가서 담당자를 찾아 유권해석을 의뢰했더니 그건 ‘합법’이라고 했습니다. 당장 선생들을 수소문하고 강의를 녹음해 제품으로 만들었는데 대히트였어요.”

    ―긍정적 확신이 성공으로 이어진다는 말씀인가요?

    “저는 고스톱을 좋아하는데 일단 광(光) 2장이 들어오면 나머지 한 장도 내게 온다는 믿음을 갖고 칩니다. 70% 이상은 정말로 들어와요. 내가 남들보다 퍼팅(골프)을 잘하는 편입니다. 왜냐고요? 늘 ‘이것은 들어간다’는 자기최면을 걸고서 쳐요.”


  • ■“IMF는 나에게 전화위복(轉禍爲福)”

    ―그룹실적을 보니까 IMF 이후 1998, 1999년 두 해 동안 매출과 이익이 대폭 줄었더군요.

    “사업을 시작하고 그때만큼 기업을 한다는 것이 부끄러웠던 적이 없습니다. 이후 다시는 그런 수모를 당하지 않는 방향으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어려움을 겪으셨습니까?

    “실은 그때 막 웅진코웨이의 정수기 사업이 흐름을 타려고 할 때였습니다. 출판 다음으로 내가 심혈을 기울여 시작했던 사업이지요. 그런데 IMF가 터지니까 공장에 물건은 쌓이고 심지어 사장을 맡겠다는 사람조차 없었어요. 어쩔 수 없이 내가 직접 경영에 뛰어들어야 했습니다.”

    ―회장님의 장기인 ‘방문판매’를 정수기에도 적용하셨군요?

    “그렇지 않아요. 아무도 물건을 사지 않으니 어쩔 수 없어서 그랬지. 소비자들에게 우리 물건을 맡겨둔다는 심정으로 한 것이에요. 그런데 생각지도 않게 소비자들이 바로 우리 직원들에 대한 감시자가 돼주는 것이에요. 제품에 하자가 있으면 즉각 제품을 반환하더라고요. 그러니 우리 직원들도 대충대충 할 수가 없게 됐습니다. 그때서야 ‘아! 이게 획기적인 영업모델이구나!’ 깨닫게 되었습니다. 전화위복이지요.”

    실제 1999년 6610억원이던 웅진의 매출은 이 같은 렌털 영업기법에 힘입어 불과 1년 만에 1조1200억원으로 두 배 가까이 성장한다. IMF가 웅진그룹에는 ‘블루오션’을 열어준 셈이 됐다.

    ■“사랑과 행복을 주는 기업 만들 것”

    ―회사 곳곳에 ‘또또 사랑’이라는 표어가 눈에 띕니다.

    “내 25년 기업활동의 요체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또또 사랑’입니다. 사랑하고 또 사랑하고 또또 사랑하자는 것이 ‘또또 사랑’입니다. 돈 한푼 없이 시작해 현재의 웅진이 있을 수 있는 원동력의 하나가 바로 ‘사랑’입니다. 저는 지금도 계열사 회의를 할 때마다 사장들에게 실적보다는 ‘직원들에게 신기를 불어넣기 위해 무슨 행사를 열었습니까?’ 하고 묻습니다. 현장을 방문했다가 풀 죽은 사원들을 보면 불러서 함께 목욕탕에 갔어요. 회사 이야기는 일절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근처 맛있는 국밥집 같은데 가서 즐거운 이야기 하며 점심 먹고 나서 들여 보냅니다. 오후에 그 직원들을 보면 얼굴색이 완전히 바뀌어 있습니다.”

    ―올해는 어떤 이야기를 많이 하실 건가요?

    “행복입니다. 신년사에서도 우리 직원들에게 당신들은 행복해져야 한다, 당신들은 충분히 그럴 권리를 갖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누구는 싫고 누구는 잘못됐고 하는 부정적 마음부터 털어버려야 합니다. 아침에 일어나 밥 먹는 순간부터 감사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올해는 작심하고 ‘행복 전도사’가 돼 보렵니다.”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