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WEEKLY BIZ] 특허 독점 않고 널리 퍼뜨려 온국민을 이롭게… '21세기 문익점'/'우보천리(牛步千里)' 윤동한 한국콜마 회장

영국신사77 2018. 10. 21. 22:08

[WEEKLY BIZ] 특허 독점 않고 널리 퍼뜨려 온국민을 이롭게… '21세기 문익점'

입력 2018.10.05 03:00

'우보천리(牛步千里)' 윤동한 한국콜마 회장

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최혜인
"어서 오세요. 반갑습니다." 서울 서초동 서울교대 인근 한국콜마 본사 건물 8층 회장실. 윤동한 한국콜마 회장이 일행을 맞았다. 회장실이라곤 하지만 20㎡(7평) 정도 소박하고 작은 공간. 책상과 회의용 탁자 주변엔 윤 회장이 그동안 모은 소 형상 기념품 100여 점이 곳곳을 차지하고 있었다. 윤 회장이 건넨 명함에는 회사 이름 앞에 '우보천리(牛步千里)'라는 사자성어가 붙어 있다. '우보천리 한국콜마.' 다른 직원들 명함도 마찬가지다. 우보천리가 한국콜마를 관통하는 핵심어인 셈이다. '스피드 경영'이 화두인 시대, 윤 회장은 '우보경영'에 집착한다. "토끼 걸음으로 100리를 가는 삶보다 소걸음으로 1000리를 가는 삶이 더 많은 가치를 담아낸다"는 믿음이다.

한국콜마는 올해 새로운 전기(轉機)를 맞았다. 1990년 출범, 28년간 꾸준히 화장품 ODM(제조업자개발생산)과 제약품 위탁생산에만 집중했는데, 지난 4월 1조3100억원을 쏟아부어 '컨디션'과 '헛개수'를 생산하는 CJ헬스케어를 인수한 것. 중견기업이 재벌기업(계열사)을 사들인 흔치 않은 사례이다보니 업계에선 "새우가 고래를 삼켰다" "'승자의 저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질시성 분석도 나왔다. 하지만 윤 회장은 "지금까지 하던 것처럼 묵묵히 나아가다 보면 나중엔 평가가 달라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역사에 관심이 많다. 바쁜 와중에도 틈날 때마다 역사서를 탐독하고 유적지를 찾는다. 이순신 장군에 대한 관심을 모아 지난해 서울여해재단을 세우기도 했다. 여해(汝諧)는 이순신 장군 아호다. 최근엔 '기업가 문익점'이란 책도 펴냈다. 목화씨를 들여온 고려 말 문인 문익점 선생을 기업가 관점에서 새로 조명한 내용이다.

문익점의 거상(巨商) 정신 배워야

―문익점에게 주목하신 이유가 뭡니까.

"우리 역사에서도 기업가 정신이 살아 있다. 개성상인, 보부상, 거상 임상옥…. 이들이 역사 속에서 실천한 상인정신을 현대에 되살려야 한다. 문익점 선생에 대해 연구하다가 그런 면모를 발견했다. 그는 남들이 시도하지 않은 목화 재배에 과감히 뛰어들었다. 원나라에서 목화씨를 몰래 들여왔다. 목표를 정하고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낸 것이다. 그리고 목화를 보급하는 과정에서 특허나 독점을 주장하지 않고 무료로 나눠준다. 말하자면 파이를 키운 것이다. 그래서 목화산업이 융성할 수 있었다. 기업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독점이 아니라 경쟁이 있어야 시장이 커지고 결국 자기에게 돌아올 몫도 많아진다. 문익점 선생은 그 시절 이미 그 이치를 깨쳤던 셈이다.

제약회사(대웅제약)에 다니던 시절, 비슷한 경험을 했다. 히트 제품에 대해 특허를 신청하려는 움직임이 있어 '그러지 말고 다 활용할 수 있도록 풀자'고 했더니 다들 '미쳤느냐'고 하더라. 하지만 시장을 키우고 산업을 일으키려면 혼자 움켜쥐고 있어선 안 된다. 거상(巨商)이라면 그런 의식을 품어야 한다. 문익점 선생 덕분에 목화가 전 국민에게 보급되면서 서민들은 지긋지긋한 추위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국민 편익을 극적으로 증진시킨 점만 봐도 문익점 선생은 지금 관점으로 보면 위대한 기업인으로 불러도 손색이 없다."

―한국콜마는 ODM에 집중한 B2B(기업 대 기업 거래) 회사였다. 그런데 올해 인수한 CJ헬스케어는 컨디션·헛개수 같은 완제품을 생산하는 B2C(기업 대 소비자)다. 기업 정체성이 바뀌는 건가.

"사실 B2B나 B2C나 고객 중심 사고를 해야 한다는 점에 크게 다를 바 없다. 우리는 B2B 회사이긴 했지만 마인드는 B2C였다. 단순히 주문받아 생산하는 게 아니라 신제품을 개발한 다음, 역으로 제안해서 판매하는 게 중심이었다. ODM이란 그런 것이다. 이 때문에 고객이 요즘 어떤 제품을 원하는지 트렌드를 잘 읽어야 한다. BB크림은 우리가 발굴했다. 원래 독일에서 의료용으로 쓰던 걸 화장품으로 개조했다. 피부개선 효과가 탁월하면서 편안하게 바를 수 있는 제품을 개발한 것이다. 선크림도 우리가 개발한 제품은 단지 자외선 차단이란 기능성을 넘어 화장품 개념을 강조했다. 일반 로션처럼 선크림을 바를 수 있게 했다. (이 대목에서 윤 회장은 자사가 개발한 선크림을 꺼내 손등에 직접 바르면서 말을 이어갔다.) 성능을 한 차원 도약시킨 것이다. 평소 그런 소비자 요구를 읽는 작업을 꾸준히 해왔기 때문에 B2C가 사업 영역으로 들어온다 해도 낯설 게 없다."

이미지 크게보기
윤동한 한국콜마 회장이 집무실에서 평소 수집했던 소 형상 조형물 중 하나를 들고 있다. / 주완중 기자
독자 브랜드 안 내는 건 신의 때문

―CJ헬스케어는 제약과 음료사업이 8대2로 제약 비중이 크다. 한국콜마는 화장품과 제약이 현재 7대3이다. 제약 부문을 강화하는 건가.

"물론이다. 기본적으로 제약·화장품이란 두 축은 유지하면서 제약에 대한 투자를 강화할 계획이다. 그중에서도 복제 신약이 유망하다. 그 분야에 화력을 집중하려 한다. 사실 화장품과 제약은 점점 경계가 허물어지는 추세다. 단지 미용만을 강조하는 화장품 시대는 저물고 있다. 제약 기술과 결합한 기능성 화장품이 대세다. 또 하나 동양의학과 서양의학 융합도 진지하게 추구할 방침이다. 동양의학은 면역력, 신체력을 끌어올리는 데 관심이 있다. 서양의학은 주로 증세 개선에 초점을 맞춘다. 이런 두 장점을 결합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건강식품은 그런 점에서 유망한 사업이다."

―30년 가까이 화장품 생산을 했다. 나름 노하우도 쌓였고 직접 독자 브랜드를 내놓으면 더 많은 수익을 올릴 텐데.

"하고 싶지만 해서는 안 되는 일이 있는 법이다. 우리가 주문생산(ODM)을 계속하면서 뒤에선 완제품을 만들어 내놓는다면 고객사와 경쟁을 하자는 건데 그게 기업윤리적으로 타당한 행태냐. 우리는 그동안 플랫폼으로 수많은 중소 화장품회사 젖줄 역할을 했다. 그렇게 쌓은 신뢰를 하루아침에 저버리는 짓은 잠시 돈을 만질 수는 있겠지만 오래가진 못한다. 큰물이 나면 소는 살고 말은 죽는다고 한다. 사실 소는 헤엄을 못 치고 말은 헤엄을 칠 줄 안다. 그런데 소는 물에 따라 그냥 떠내려가면서 목숨을 건지지만 말은 자꾸 헤엄치고 안간힘을 쓰다 물에 휩쓸려 죽는다. 그런 게 세상사라고 믿는다. 우리를 통해 성공한 기업이 많이 등장하는 것도 보람이 크다. 우리는 우리 길을 갈 것이다. 한눈팔지 않는다. 더 큰 욕심을 위해 신의를 저버리는 일은 없다."

협동심 없는 사람은 채용 안 해

―입사 면접 때 "일요일 오전 친구를 부르면 몇 명이나 나올 것 같냐"는 질문을 한다고 들었다.

"얼마나 자신과 자신 주변 관계에 대해 솔직히 알고 있는지 그걸 정직하게 얘기하는지 파악하기 위해 던지는 질문이다. '10명도 자신 있다'고 호기롭게 과장하는 지원자도 있는데 짓궂게 '그럼 지금 불러보라'고 하면 쩔쩔맨다. 소문이 나서 이젠 다들 답변을 준비하고 들어오길래 요즘은 '학창 시절에 친구에게 노트 빌려준 경험이 있느냐'고 묻는다. 무슨 생각인지 '없다'고 하는 지원자들이 꽤 있다. 이런 친구들은 안 뽑는다. 조직생활 기본인 협동심에서 심각한 결격 사유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주 52시간 근무제로 타격을 입지는 않은지.

"사실 마음에 들진 않지만 맞춰가야지 별수 있느냐고 다짐하고 있다. 대신 기자가 집에서 쉬면서도 기삿거리를 생각하는 것처럼 52시간이란 근무 제약에 얽매이지 말고 생활 속에서 업무 아이디어를 찾을 수 있다면 좋겠다. 회사나 일에 대한 애착이 있다면 근무시간은 그다지 문제가 될 게 없다. 개인적으론 업무시간이 줄어들면 남는 시간에 독서를 하면 어떨까 싶다."



[WEEKLY BIZ] 1주일에 책 한 권 읽는 독서광… 직원들 승진하려면 1년에 6권 읽고 독후감 내야

입력 2018.10.05 03:00

윤동한 회장은 독서광이다. 1주일에 1권은 꼭 읽으려고 노력한다. 최근엔 사주명리학 연구가 조용헌이 지은 '조용헌의 인생독법'과 소설가 한승원 산문집 '꽃을 꺾어 집으로 돌아오다'를 들고 다닌다.

'우보 경영'과 더불어 한국콜마를 상징하는 또 하나의 화두는 '독서 경영'이다. 직원들은 승진하려면 1년에 6권을 읽고 독후감을 내야 한다. 무슨 책이든 상관없다. 만화책도 마찬가지다. 윤 회장은 "'식객'이나 '만화 조선왕조실록'은 만화책이지만 수준이 높다"면서 "책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건 무궁무진하다"고 강조했다. 지금까지 직원들이 쓴 독후감 분량이 4만3000여 권에 달한다. 윤 회장은 "그게 한국콜마를 키운 저력이 아닐까"라고 말했다. 한국콜마 본사 복도에는 'KBS(콜마 북 스쿨)'란 이름으로 직원들이 얼마나 그동안 책을 읽었는지 독서탑으로 형상화한 벽보가 붙어 있다.

윤 회장이 그동안 섭렵한 책들 중에서 기억에 남는 책은 5권. 시인 정호승이 지은 '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 김종대 헌법재판관이 쓴 '이순신, 신은 이미 준비를 마치었나이다', 김용운 한양대 수학과 명예교수가 올해 펴낸 '역사의 역습', 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가 강의 내용을 정리한 '이슬람학교', 윤정구 이화여대 경영학과 교수의 '진성리더십'이다. 윤 회장은 읽기도 하지만 직접 책을 쓰는 데에도 재미를 붙였다. 자서전 격인 '인문학이 경영 안으로 들어왔다'에 이어 '기업인 문익점'을 써냈고, 세 번째 책으로는 이순신 장군을 도운 노장(老將) 정걸(丁傑)에 대한 내용을 준비하고 있다. 정걸은 조선 중기 무신으로 이순신보다 서른한 살 많으며 경상·전라좌수사와 수군절도사를 지낸 군 선배다. 그런 그는 임진왜란이 터지자 78세 고령에 전라좌수사 조방장으로 참전, 이순신을 도와 무공을 세웠다. 윤 회장은 "좋은 리더와 참모가 이런 관계가 아닐까 생각한다"면서 "앞으로 역사경영 에세이를 자주 써서 남기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