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북] 여성 정치, 간판을 내려라
[동서남북] 여성 정치, 간판을 내려라
입력 : 2017.01.05 03:15

"우리 정치가 부패의 악순환을 되풀이한 건 남성 중심 문화 때문이다. 여성이 맑은 정치의 새판을 짜야 한다."
이 비장한 선언이 나온 건 17대 총선을 목전에 둔 2003년 겨울이다. 여성의 정치 참여를 늘리기 위해 여성계가 똘똘 뭉쳤다. '여성 100인 국회로 보내기'란 기치를 걸고 각 정당에 여성 후보 공천을 압박했다. 국회의원 후보 공천 시 비례대표 50%, 지역구 30%를 여성에게 할당하라 건의했고, 받아들여졌다. 효과는 컸다. 16대 국회에서 15명에 불과했던 여성 의원이 17대에서 39명으로 급증했다. 이들은 유림의 강력한 저항에 맞서 숙원이던 호주제 폐지를 일궈냈다. 20대 총선에선 51명으로 역대 최다 당선자를 배출했다. 3선 이상 다선(多選) 의원이 11명, 4개 정당 중 두 곳의 당대표가 여성이다. 여성 정치가 꽃피는 듯했다.
그러나 2016년은 여성 정치가 꽃망울을 터뜨리기도 전에 썩어 짓밟힐 수 있다는 위기감을 몰고 왔다. 늘어나는 여성 정치인 수는 그야말로 숫자일 뿐 과연 여성 정치가 남성 정치의 폐단을 막는 대안이 될 수 있는지 의구심이 들게 했다. 대한민국 최초 여성 대통령은 소통과 포용의 리더십이 여성 고유의 강점이 아니란 걸 온몸으로 보여줬다. 도덕성에서도 결코 우위에 있지 않았다. 2015년 한명숙 전 총리가 뇌물 수수로 구속된 데 이어 여성운동 산실이라는 이화여대에서 권력형 입학 비리가 터져 나왔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여성 지도자의 언행이 얼마나 천격(賤格)이 될 수 있는지 보여줬고, 이혜훈·나경원 의원과 조윤선 장관은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세간의 비아냥거림을 입증이라도 하려는 듯 공개 석상에서 볼썽사납게 맞부딪쳤다.

이 총체적 난국은 한국의 여성 정치가 걸음마 수준이란 걸 보여준다. '유리천장'은 뚫고 난 뒤가 더 위험한 법이다. 방심하는 순간 깨진 유리 조각들이 급소를 향해 날아든다. 얄팍한 양성 평등 의식 갖고는 어림없다. 더 강하고 영리해져야 한다. 권력 의지 못지않은 실력을 갖춰야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1/04/201701040310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