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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기의 시시각각] 덩샤오핑은 왜 박태준을 보자 했나

영국신사77 2016. 8. 20. 20:34

[전영기의 시시각각] 덩샤오핑은 왜 박태준을 보자 했나


중앙일보

전영기 논설위원

8월 24일은 한국과 중국이 수교한 지 24년 되는 날이다. 지금은 중국이 우리를 먹여 살리기라도 하는 듯 으스대지만 1990년대만 해도 한국의 도움을 간절히 바라는 빈국(貧國)이었다. 중국 근대화의 아버지 덩샤오핑(鄧小平)은 수교의 해였던 92년 여름 상하이 영빈관으로 당시 박태준 포항제철(지금의 포스코) 회장을 초청했다. 박 회장의 생전 회상에 따르면 덩샤오핑은 정각 밤 12시에 나타나 한국의 비약적인 경제 발전, 포항제철의 선도적 역할을 얘기하더니 “중국에 당신네 같은 제철소를 짓고 싶은데 도와 달라”고 요청했다. 면담시간은 40분.

▶덩샤오핑(당시 88세)=“박정희 대통령이 한국의 산업화를 성공시켰다. 박 대통령의 근대화 철학을 듣고 싶다.”

▶박태준(65)=“나는 5·16혁명 때 박 대통령의 비서실장이었다. 우리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만들었다.”

▶덩=“내가 일본에 가서 이나야마 요시히로(稻山嘉寬) 신일본제철 회장한테 들었는데 ‘제철소는 돈이나 기술로 짓는 게 아니다. 사람이 만든다’고 하더라. 도와 달라.”

▶박=“우리는 산업화로 나라를 지켰다. 북한의 공격을 막아내기 위해 포항에, 구미에 산업단지를 만들었다. 중국이 우리나라처럼 근대화로 죽 나아갈 수 있겠나.”

▶덩=“그 문제는 걱정하지 마라. 내가 죽더라도 근대화 노선을 뒤집을 사람은 없다. 내 뒤의 지도자들까지 다 줄 세워놨다.”

박태준의 목구멍에서 울컥 치밀어 오르는 게 있었다. 6·25 때 대위 계급장으로 권총 한 자루 들고 청진까지 올라갔다 흥남에서 철수한 그였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어갔고 나라가 피폐해졌는지 생각하면 전쟁을 일으킨 김일성에게 치가 떨린다던 박태준이었다. 덩샤오핑에게 ‘왜 당신네는 6·25 때 김일성을 도와줬는가’라고 쏘아붙이고 싶었는데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박태준은 귀국한 뒤 덩샤오핑이 보낸 바오산(寶山)강철의 셰치화(謝企華·당시 49세) 부사장에게 포항·광양 공장을 알뜰하게 견학시켰다. 줄잡아 10번쯤은 왔다 갔다고 한다. 제철소의 설비 도면, 회사 규정집 등을 받아갔다. 박태준은 ‘국가 전략기술을 유출한 것 아니냐’는 내 질문에 “나도 포철을 처음 만들 때 일본 이나야마 사장과 신일본제철소를 수도 없이 방문해 마음껏 기술을 얻어왔다”고 답했다. 그는 덩샤오핑은 장쩌민 국가주석에 이어 후진타오 차기 주석까지 최고지도자의 줄을 세워놨던 것 같다고 기억했다.

내가 92년에 있었던 이 얘기를 들은 건 2010년 10월 그와 동행한 상하이 여행길에서였다. 박태준이 세상을 뜨기 1년여 전이었다. 박태준은 “덩샤오핑과의 만남은 중국 당국의 요청에 따라 죽을 때까지 비밀로 부치기로 했다. 그래서 영빈관에 갈 때 수행 비서조차 데려가지 않았다. 이제 18년이 지나 이 얘기를 처음 한다”고 나에게 털어놨다. 덩샤오핑은 박태준과 면대면의 인격적 접근이 필요했을 것이다. 직접 만남을 통해 자기 조국과 인민의 먹고사는 문제와 직결된 철강 기술을 전수해 달라고 간절히 호소하고 싶었을 것이다. 사람의 혼과 애국심이 배어든 이런 종류의 기술은 메마른 계약서 몇 장으로 결코 얻어낼 수 없다는 진실을 덩샤오핑도 알고 박태준도 알았을 터다. 이런 만남이 공개될 경우 누군가가 의도를 왜곡하고 행동을 방해할 수 있다는 이심전심이 두 사람을 침묵시킨 이유였으리라.

박태준은 수교 24년 만에 가장 나쁜 상황에 빠진 지금의 한·중 관계를 예측했던 걸까. 6년이 지난 나의 빛 바랜 취재수첩엔 “중국인들을 상대하려면 의도를 읽어라. 그 마음을 훔쳐라. 그래야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는 발언이 적혀 있다. 내가 유명을 달리한 취재원과 약속을 어기고 이 스토리를 오늘 기사화한 이유는 두 가지다. 우선 중국인에게. 당신들의 눈부신 성장이 박태준 같은 한국인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했다는 점을 알리고 싶다. 덩샤오핑은 한국을 고마워했다. 둘째 한국인에게. 중국과 문제는 정성과 의리, 사실관계를 간곡히 따져 접근하면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다.

전영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