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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선동·사이길·해방촌… 동네는 뜨는데 우린 또 떠나야 하네/[책]서울, 젠트리피케이션을 말하다

영국신사77 2016. 8. 7. 20:36

익선동·사이길·해방촌… 동네는 뜨는데 우린 또 떠나야 하네

     
       

성공회대 신현준 교수 등 창신동·구로 등 8곳 현장 취재

'뜨는 동네' 만든 선구자들, 치솟는 임대료에 동네서 밀려나

건물주 대 세입자 이분법 넘어 예술과 자본 사이 균형 찾아야

조선일보
서울, 젠트리피케이션을 말하다ㅣ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기획ㅣ신현준·이기웅 편집ㅣ푸른숲ㅣ504쪽ㅣ2만5000원

지난 몇 년 사이에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은 학계가 아니라 대중의 용어가 됐다. 학계의 단계별 정의를 잠시 뒤로하고, 현장의 손쉬운 사례를 들어보자. 가로수길 플라워카페가 빠진 자리에 중국인 관광객을 겨냥한 프랜차이즈 화장품 숍이 들어서는 것. '뜨는 동네'를 처음 만드는 데 일조했던 카페 주인은 더 이상 치솟는 임대료를 감당할 여력이 없다. 그 나름대로 감각 있는 젠틀맨(gentleman)이라고 생각했던 창의적 자영업자도 결국 동네를 떠날 수밖에.

신현준 성공회대 교수 등 8인이 함께 쓴 '서울, 젠트리피케이션을 말하다'는 제목 그대로 서울이라는 거대 도시의 변화를 다룬다. 서촌·종로3가·홍대·가로수길·한남동·구로공단·창신동·해방촌 등 8곳이 대상이다. 예술가의 문화 자본이 개발업자에 의해 경제 자본으로 바뀌고, 토박이와 선구자들은 터전에서 쫓겨나는 우울한 풍경들이다.

애정이건 혐오건 서울이라는 뜨거운 도시를 포기하기 싫은 사람들에게, 저널리스트와 연구자의 렌즈를 번갈아 끼워가며 관찰하는 이 도시의 화장 전 얼굴은 충격적이다. 1095일 현장 조사와 132명 대면 인터뷰는 생생하고, 산업화 이후 정부의 도시 개발 정책과 그 부작용을 지적하는 비판은 날카롭다.

특히 종로3가를 기록하는 신 교수의 관찰이 인상적이다. "매월 25일쯤 종묘공원 안 나가보셨죠? 가보면 장난 아니에요. 나도 거기서 할아버지 할머니들 주시는 술 받아먹고 그랬는데요. 그날은 아주 잔칫날이에요. 막걸리랑 안주랑 돌아가면서 쏘시는데 그날만큼은 부러울 것 없이 노세요."

10만~20만원의 기초수급비가 지급된 날을 묘사하는 노인 상담 전문가 인터뷰의 한 대목이다. 평소 노인들은 종묘에서 파고다공원으로 이어지는 대로변과 골목에 자리하지만, '잔치'는 낙원상가 근처나 종묘공원 일대의 봉익동에서 열린다는 팩트도 포착된다.

조선일보

‘서울, 젠트리피케이션을 말하다’는 서울 8곳의‘뜨는 동네’를 찾아간다. 예술이 자본으로 대치되면‘뜨는 동네’가‘떠나는 동네’가 되는 것은 한순간. 구로공단처럼 정부가‘집도의’로 나선 사례도 있다. 이곳에는 옛날 스타일 그대로의 무도장과‘전신 성형’한 최첨단 빌딩이 공존한다. /푸른숲·고운호 객원기자·이경민 기자·허영한 기자·김연정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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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들의 파라다이스'라는 종로3가 뒷골목은 광복 이후부터 집창촌으로 이름난 곳. 소위 '종삼'이라던 시절부터 퇴폐와 쾌락의 역사를 날렵하게 요약한다. 선캡과 작은 크로스백으로 무장한 이른바 '박카스 할머니'의 최근 작업 방식에 대한 기록도 있다. 자칫 선정과 자극으로 오해될 수 있는 이 사례를 먼저 인용하는 이유는, 그만큼 종로3가 일대가 낙후·쇠퇴·노후의 상징이었다는 것. 노인뿐만 아니라, 성 소수자도 마찬가지다. 서울의 '중심의 중심'이면서도 섬처럼 정체된 공간. 그는 2007년 오세훈 시장의 '도심 재창조 프로젝트'와 2011년 박원순 시장의 '도심 재생' 패러다임을 나란히 비판한다.

전에는 유흥지와 거주지가 함께 뒤섞인 공간이었지만, 최근에는 계급·젠더·세대 측면에서 분명하게 대비되는 변화를 보이고 있는 익선동과 돈의동 차이에 대한 분석도 흥미롭다. 대통령 직속 지역개발위원회가 '취약 지역 생활 여건 개조 프로젝트' 대상으로 전국 85곳을 확정했을 때 서울에서는 유일하게 '돈의동 쪽방촌'이 선정됐을 만큼 처절하게 낙후한 지역. 하지만 슬럼화하고 있는 돈의동과 달리 이웃 동네 익선동은 한옥을 개조한 밥집, 카페, 공방, 게스트하우스 등이 들어서면서 독특한 분위기를 더하기 시작했다. 돈의동이 노인과 성 소수자와 가난을 대표한다면, 익선동은 젊음과 새로운 자본의 아이콘이 됐다.

실향민 월남인이 모여 살던 해방촌에는 이제 콩밭커피, 주민 공동체 '빈집', 인문학 공동체 '수유너머R', 문학 중심 서점 '고요서사' 등이 새로 생겼다. 지역 예술가·활동가들의 커뮤니티 활동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커뮤니티의 활동이 전무하다시피 해서 속절없이 젠트리피케이션이 진행됐던 곳을 구로공단·가로수길이라고 한다면,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힘을 합쳐 상권 개발을 공동으로 도모하는 방배동 사이길이나 해방촌에서는 일말의 속도 조절 가능성을 발견하기도 한다.

승자와 패자, 건물주와 세입자, 자본과 예술의 이분법적 대립과 비난이 '서울, 젠트리피케이션…'의 목적은 아닐 것이다. 이 대목에서 이 책에도 등장하는 미국 여성학자 레베카 솔닛(55)을 재인용해 보자. "1980년대 뉴욕의 이스트빌리지부터 최근 샌프란시스코 미션에 이르기까지, 동네에 늦게 진입한 사람들은 동네의 오래된 주민을 박탈하기보다는 그들과 자신을 동일시하고, 그들을 지원한다. 그들, 그래 우리는 젠트리피케이션의 돌격대일 수는 있지만, 나는 우리 행동이 문화 전체에 이득을 준다고 생각한다."

뉴욕이나 샌프란시스코뿐만 아니라 서울도 마찬가지다. 콘크리트 회색 도시 사이에 연둣빛 화분을 조심스레 놓는 일이 필요하다. 가해자의 위치에 서건, 피해자의 위기에 빠지든, 그 사실을 잊지 말기. 이 도시에서 살아가야 할 사람은 결국 서울이라는 도시를 포기하지 못하는 우리 자신일 테니까.

[어수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