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네 본 것과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계 1 : 19 - 2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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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말씀 / 요한계시록 1 : 19 - 20
요절: "그러므로 네 본 것과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 (계 1:19).
서론 : 사도 요한은 요한계시록의 대지를 세 가지로 구분했다. 그것이 19절에 있는 "그러므로 네 본 것과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는 말씀에서 나오고 있다. 내 본 것이란 사도 요한이 이 계시를 받을 당시 그의 눈앞에 펼쳐졌던 장면들이다. 이제 있는 일은 지금 요한이 받은 계시를 아시아에 있는 7교회에 보내게 되는데 그 7교회의 형편을 이제 있는 일이라고 했다. 장차 될 일이란 이 계시의 전체적인 내용으로서 인류의 종말에 일어날 징조와 구원과 심판에 대한 계시를 말한다. 이제 있는 일과 네가 본 것은 다만 이 "장차 될 일"을 계시해 주시기 위해 필요한 장면들이다.
1. 네가 본 것
요한이 본 것은 이 종말의 게시를 받을 때 볼 수 있었던 하늘 보좌의 광경들을 말한다. 장수를 든다면 1,4,5장 등이다. 1장은 기도하는 요한 앞에 계시자가 나타나 그에게 자신의 모습을 나타내 보여 주셨다. 요한은 이때 계시자가 누구며 그가 왜 계시를 자기에게 보여 주셨는지 이 계시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4장은 요한에게 계시해 주신 종말의 사건을 계획하고 집행하는 곳이 어디인지에 대하여 밝히 보여 준다.
다음에 5장은 이같은 종말적 계시를 친히 집행 하실 분이 누구이신 지에 대하여 보여 주고 있다. 이처럼 요한이 본 것이 중요한 것은 이 계시자가 누구이며 이 계시를 집행하는 곳이 어디이며 또한 이 계시를 집행하는 분이 누구이신 가에 대한 분명한 해답을 보여 주시므로 요한에게 계시해 주신 종말적인 계시는 "반드시 속히 될 일"이며 "때가 가까운 일"이며 또한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의 본 것을 다 증거"한 바 탕이 된 것이다.
2. 이제 있는 일
이제 있는 일이란 2장과 3장에 나오는 7교회를 의미한다. 요한은 이 계시를 받을 때 주님으로부터 "너 보는 것을 책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일곱 교회에 보내라"는 명령을 받았는데 그 7교회에 대한 형편이 계시상, 이제 있는 일이 된다. 이 7교회의 사자는 그 당시 소아시아 지역에 있었든 이들 7교회의 목회자들을 의미하는데 더 정확히는 주님 오실 때까지 이 지상에서 하나님의 교회를 목회 할 주의 종들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이 계시를 주실 때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지시하신 계시라고 하셨는데 주님이 오실 때까지 모든 하나님의 종들이 받아 "읽고 듣고 지키는 자"가 되도록 힘써야 할 하나님의 말씀이 바로 요한계시 록이다(마24:45). "이제 있는 일"에는 각 교회의 영적인 형편을 주님의 예리하신 눈으로 살피신 바를 지적하셔서 책망하실 것을 책망하시고 칭찬하실 일을 칭찬하시며 회개할 것을 권면하신다. 그리고 만약 그 권고를 듣지 않을 시는 그들에게 내릴 징계와 심판에 관한 경종을 들려 주시는데 이같은 것들은 종말적인 교회에 들려주시는 성령의 말씀 이시다.
3. 장차 될 일
요한계시록의 핵심적인 중요 계시는 모두 "장차 될 일"에 속한 내용 들이다. 주의 재림의 시기는 장차 될 일이기 때문이다.
(1) 그러면 "장차"라고 표현된 시대는 과연 어느 시대를 의미하고 있는 것인가?: 이 해답은 어렵지 않게 풀린다. 이 계시의 전 내용이 온전히 "주의 재림"에 관한 사건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장차 될 일이란 주 재림시에 있을 사건들을 의미함이 틀림이 없는 것이다. 그것은 계시록의 전 내용이 주의 재림시에 성취될 종말론적인 사건으로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
(2) 장차 될 일의 사건이 7인의 사건으로, 7나팔의 사건으로 전개 되며 여기서 세화가 등장하고 7대접 심판이 등장한다: 요한계시록에 계시된 종말적인 사건은 모두 이 사건들이다. 나머지 문제들은 이 사건의 배경 설명이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사건들을 예언의 맥을 따라 질서정연하게 정리해 두는 일이 반드시 필요하다.
앞으로 요한 계시록을 공부하면서 7인, 7나팔, 7대접, 3화에 대한 서로간의 관계를 잘 파악해야 사건의 내용을 정확하게 깨닫게 되며 계시록 해석에 혼선을 피하고 바른 해석의 결정적인 열쇠가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3) 아래에 인과 나팔과 화와 대접 심판에 관한 맥과 서로간의 관계를 도표로 그리고 간략히 설명하기로 한다: 인(印)의 사건은 6장에만 있다. 이 사건은 요한 계시록 전체 내용을 포괄하고 있는 계시록 의 총론이다.
6째 인까지의 계시의 진행으로 주의 재림으로 말미암은 모든 종말적인 사건이 끝나게 된다. 7인은 7나팔로 전개되며 그중 마지막 나팔인 7째 나팔은 다시 7대접으로 전개되므로 인류의 최종적인 심판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화로는 5째 나팔이 첫째 화, 여섯째 나팔이 둘째 화, 일곱째 나팔이 셋째화가 된다.
요한계시록 공부는 이처럼 인, 나팔, 대접, 화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정확한 구분으로서만이 바른 해답을 찾게 된다.
7인과 7나팔과 7대접과 3화에 대한 도표
< 7인 사건 > 1째 인 사건 2째 인 사건 3째 인 사건 4째 인 사건 5째 인 사건 6째 인 사건 7째 인 사건 7나팔사건으로 ..... |
< 7 나팔 사건 > 1째 나팔 사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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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째 나팔 사건 3째 나팔 사건 4째 나팔 사건 5째 나팔 사건 (첫째 화) 6째 나팔 사건 (둘쨰 화) 7째 나팔 사건 (셋째 화) ...... 7대접 사건으로 |
< 7대접 심판 > 1째 대접 심판 | |
2째 대접 심판 3째 대접 심판 4째 대접 심판 5째 대접 심판 6째 대접 심판 7째 대접 심판 |
결론: 위에서 잠시 살펴보았지만, 계시록 해석에 있어서 인과 나팔, 대접, 화의 관계를 바로 정립하는 문제는 대단히 중요하다. 우리는 이번 구역예배공과를 통해서 이 문제에 대해 하나하나 짚어 가면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종말의 계시를 바로 깨닫게 될 것이다.
<복습문제>
① "네가 본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계 1 : 19
② "이제 있는 일"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계 1: 19
③ "장차 될 일"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계 1 : 9
<연구과제>
* 인(印), 나팔, 대접 사건/ 종말적인 계시에 있어서 인은 총론적인 계시이다. 인의 계시는 6장에만 나오는데 여기서 처음에 등장하는 4말은 7년 환난 중에 활동하므로 이세상에 여러 가지 환난, 재앙 등을 가져 올 세력들이다. 그리고 6째 인으로 주의 재림과 지상의 모든 심판이 마감되므로 종말의 계시는 끝난다. 이제 7째인을 떼시는 일로 다시 종말적인 사건은 원점으로 돌아가 이번에는 나팔로 7년 환난 중에 일어날 여러 가지 사건을 보여 주신다. 그리고 7년 환난 기간 중에는 세 가지 화의 이름으로 불려지는 큰 재앙이 있는데 그 중에 첫째 화는 다섯째 나팔에 속하며 둘째 화는 여섯째 나팔, 셋째 화는 7째 나팔에 속하는 사건이다. 이같은 사건의 진행을 늘 명심해야 한 사건의 이중적인 해석이나 엉뚱한 해석을 피할 수 있게 된다.
6.처음 사랑을 버린 에베소 교회 (요한계시록 2 : 1 - 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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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말씀 / 요한계시록 2 : 1 - 7
요절: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계2:5).
서론: 계시록 2,3장에는 일곱 교회에 대한 편지의 서론이 기록되어 있다. 요한이 편지를 보낸 일곱 교회는 그 당시로마의 통치 지역인 아시아도에 있는 소아시아 지역의 대표적인 주님의 교회들이다. 계시자이신 예수님께서 밧모섬에 유배되어 있는 사도 요한에게 본 계시를 주신 목적이, 바로 이들 일곱 교회의 사자들에게 보내시기 위해서였다.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계1:1).
1. 일곱 교회에 대한 견해
2장과 3장에 기록된 일곱 교회에 대한 견해는 여러 가지로 다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1) 첫째는 일곱 교회를 전 교회 시대로 나누고 각 교회별로 각 시대를 구분하는 해석이 있다: 이같은 해석은 세대주의 종말론에서 취하고 있는 해석인데 말하자면 에베소 교회는 주후 70년부터 312년대 까지의 교회 시대, 서머나 교회는 주후 170년부터 312년까지 사이의 교회 시대를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같은 해석은 어느 모로 보나 본문이 말씀해 주고 있는 뜻과 어긋나는 해석이므로 취할 바가 아니다.
(2) 두 번째 해석은 일곱 교회를 그 당시 소아시아 지역에 있었던 일곱 교회에 국한한다고 주장하는 견해이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은 그 당시 일곱 교회에 필요로 했던 계시였던 것이 아니라, 인류의 종말에 일어날 사건의 계시이기 때문에, 마땅히 종말 교회와 연관되어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요한이 편지로 보낸 이 메시지가 요한 당시 소아시아 지역에 있었던 일곱 교회에도 시급히 요청되는 메시지였으며, 그와 함께 종말에 처한 전 세계 교회들에게 주시는 편지라고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이 종말의 계시가 담긴 요한계시록은 모든 시대의 교회 들에게 시급히 필요로 하는 계시로, 요한의 그 시기로부터 주님이 재림 하시는 그 시기까지 모든 교회들이 이 예언의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는 자가 되어, 주 재림의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는 경종의 메시지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2. 에베소 교회가 들은 칭찬
에베소 교회는 많은 칭찬을 들었다.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치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들어 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고하셨다. 이 주님의 칭찬이 어느 면으로 보면 대단한 칭찬으로 들리지만 사실인즉 지난날에 그들이 가졌었던 신앙에 대한 칭찬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면 에베소 교회는 왜 지난날에 칭찬 받았던 열매들은 사라져 버리고 주님으로부터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는 책망을 듣고 있는 것인가? 여기에 에베소 교회의 문제점이 숨어 있는 것이다.
(1) 우리는 4절에서 언급하신 주님의 말씀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 라"고하셨다. 처음 사랑을 버린 것이 지난날의 그 좋았던 열매를 상실 한 원인이 되었고 이제 회개치 않으면 안될 처지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러면 에베소 교회가 버렸다는 처음 사랑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인 가? 이것은 에베소 교회가 처음 가졌던 주님께 대한 사랑을 가리키는 이 사랑은 순결한 사랑을 말한다.
예수님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다는 말씀에서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사랑의 표준을 제시하셨다(마22:37). 그리스도인들의 모든 열매는 바로 하나님께 대한 이 사랑이 그 출발점이 된다. 에베소 교회는 지난날에 이같은 "처음 사랑"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이 처음 사랑을 버리자 그들에게 있었던 열매들이 사라져 버리게 되었다.
(2) 이 처음 사랑은 언제 우리들에게 찾아오며 무엇때문에 떠나게 되는 것일까?: 주님께 대한 처음 사랑은 구원의 기쁨에서 찾아온다. 삭개오가 주님이 그에 대한 구원의 선언을 내리셨을 때에, 이같은 기쁨이 충만하여 자신의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을 위해 바치고 남의 것을 토색한 재물에 대해서는 4배나 갚겠다고 회개했다. 그리고 처음 사랑은 주님의 사랑을 깨닫는데서 찾아온다.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는가?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을 어떻게 나타내셨는가? 이에 대한 깨달음은 우리들로 주님에 대한 처음 사랑을 가지게 한다(요일4:9-11). 이런 주님의 사랑에 대한 깨달음은 진실한 회개를 가져온다. 주님은 우리에게 이런 사랑을 요구하신다(요21:15-18). 그런데 에베소 교회 성도들은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처음에 가졌던 주님께 대한 사랑을 상실해 버리게 되었다. 그 이유는 그들의 신앙이 점점 세상으로 치우쳐 세속화되었기 때문이다.
(3) 주님은 그들에게 회개를 촉구하셨다 : 이제 그들이 살아 남을 길은 회개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는 주님이 그들에게 회개할 것을 경종 하시면서 그 회개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 주시고 있는 사실에 관심을 기우려야 한다.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라"고 하셨다. 처음 사랑을 저버린 분명한 원인이 그들에게 있었다. 그들은 그 원인이 무엇인지 그것을 찾아내야 한다. 회개에는 그 원인을 찾아내려는 간절함이 따라야 한다.
다음에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고 하셨다. 주님은 에베소 교회가 가졌던 처음 행위를 다시 소유할 수 있기를 바라신다. 그 길은 오직 회개하는 길밖에 없는 것이다. 회개란 처음 사랑을 회복하는 일이며 그 결과 처음 행위를 다시 찾는 일이다. 우리 주님은 이같은 회개를 기뻐하시며 에베소 교회를 향하여 회개하라고 명령하신다. 이같은 회개가 없이는 다시 오시는 주님의 신부가 될 수 없는 것이다.
(4) 주님은 그들이 회개치 아니했을 때 그들에게 내리실 보응에 대하여 엄중한 경종을 들려 주셨다: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고 하셨다. 여기서 주님이 옮기시겠다고 하신 촛대란 바로 "성령"을 의미한다.
성령이 임재하시지 아니하는 교회는 이미 촛대가 옮겨진 교회로, 어두움에 버려둔 교회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축복도 은혜도 구원의 역사도 일어날 수 없는 것이다.
결론: 에베소 교회는 종말 교회의 표본이다. 종말에 처한 교회는 먼저 주님께 대한 사랑이 식어진다. "인자가 올 때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는 말씀은 주님께 대한 사랑을 볼 수 있겠느냐는 뜻이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
에서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온다고 했는데 그 중에 가장 중한 죄악이 "자기를 사랑하는 일"로 나와 있다(딤후3:1-5). 우리는 주님께 대한 "처음 사랑"을 소유하고 있는 것인가?
<복습문제>
① 에베소 교회가 칭찬들은 열매는 무엇 무엇인가?
계 2 : 2
② 에베소 교회는 무엇 때문에 책망을 들었나?
계 2 : 4
③ 회개치 않을 때 주님은 어떻게 하시겠다고 하셨나?
계 2 : 5
<연구과제>
* 에베소 교회가 미워한 니골라당의 행위/ 나골라는 이방인으로 처음에 유대교로 개 종했다가 다시 기독교로 개종한 자로 예루살렘 교회에서 일곱 집사 중 하나로 선출된 자로 알려진 인물이다(행6:5). 이자는 기독교 초기의 교회들에 의해 니골라당의 창시자로 알려졌다. 니골라당은 기독교의 교리를 잘못 오용하여 오히려 육신의 죄악을 조장하는 일을 하게 되었다(갈5:13). 그 주장의 일부를 보면 인간의 구원은 영에 관한 것이지 육신이 아니다. 육신의 죄는 이미 용서받았으니 육신의 죄에 관심을 가질 필요는 없다.
우상의 제물을 먹거나 음행을 한다고 해도 구원의 자리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같은 죄악에서 떠나지 아니한 이방인들이라도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구원론을 주장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의 이같은 교리는 죄와 타협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았으며 세상과 타협할 수 있도록 오도되었다. 그러나 에베소교회는 이같은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하였다. 아직 온전히 세속화된 자리에까지 이르지 아니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출처: 밤중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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